[기자의 눈] 정치 공방 휩싸인 '종묘'…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 오현주 기자

(서울=뉴스1) 오현주 기자 =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가 하루아침에 정치 공방의 한가운데 섰다. 서울시가 10월 말 종묘 인근 세운4구역의 높이 제한을 최고 71.9m에서 141.9m로 완화하는 재정비 계획을 고시하면서다.
대법원이 이달 6일 조례 개정이 적법하다고 판결했지만 국가유산청 등 관계 기관의 비판은 멈추지 않았다. 10일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종묘를 찾았고,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은 '오세훈 시정실패 TF'(태스크포스)까지 발족하며 오세훈 시장을 정조준했다. 순식간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인 셈이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문화유산보호 구역 밖에 있고 종묘 정전에서 500m 거리에 있어 종묘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고 거듭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 중심의 정치적 공방 속에서 정작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빠져 있다. 20년간 표류한 재개발에 지친 세운 4구역 토지주 140여 명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토지주 주모 씨는 "왜 정치권이 갑자기 우리만 타깃으로 삼느냐"며 "문화재청의 높이 제한으로 이미 토지주 3분의 2가 현금청산을 택할 만큼 지쳤다"고 토로했다.
일부 소유주들은 이번 반대 움직임이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포석"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이번 논쟁은 세운4구역 소유주들의 삶이 배제된 채, 정치의 언어로만 소비되고 있다. '역사적 가치 훼손'·'정책 철회'·'리버풀처럼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취소 우려' 같은 자극적 단어들이 앞서며, 이들의 20년은 '탐욕'으로 폄하되고 있다.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양측이 모인 현실적 해법을 찾는 협상 테이블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하루빨리 만나 심도있는 대화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종묘를 지키기 위해 세계유산영향평가 절차(HIA)를 밟자는 주장도, 세운4구역의 개발을 추진하자는 입장도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누구 더 목소리가 크냐'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세운4구역이 추가 평가를 받게 된다면 채무가 늘어나고, 그 부담은 결국 서민의 몫이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하고 양측이 빨리 만나야 한다.
종묘와 세운4구역은 누구의 정치적 실적을 위해 소비돼서는 안 된다. 서울은 그렇게 다뤄도 되는 도시가 아니다. 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센 말'이 아니라 '조율과 중재'다.
woobi123@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