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와의 전쟁' 선포…건설업계, 살얼음판 속 산업 구조개선 요구

[李대통령 100일]공공입찰 배제·과징금 등 무관용 제재
"안전 강화 공감 저가 수주·하도급 구조 개선도 시급"

이재명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황보준엽 기자 = 출범 100일을 맞은 이재명 정부의 건설안전 정책은 '산재와의 전쟁'으로 요약된다. 반복되는 건설현장 사망 사고에 대응해 면허 취소, 공공입찰 배제, 과징금 상향 등 강력한 제재를 연이어 내놓으며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다.

다만 업계는 안전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처벌 일변도'에는 한계가 있다며 불법 하도급·저가 수주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이 병행돼야 한다고 호소한다.

"산재는 사회적 타설"…강경 제재 불가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산재 근절'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국무회의 등에서 그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며 강경한 메시지를 던졌다.

정부 목표는 사망자 비율(만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29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 근로자 1만 명당 산재 사망률은 0.39명으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면허 정지·취소, 공공입찰 제한 등 고강도 제재를 시행하고, 영업정지 요건을 기존 '사망자 2명 이상'에서 '1명 사망'으로 낮추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국회에서는 중대재해 발생 건설사에 대해 매출액 3%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모습. (자료사진)/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저가 수주 구조, 안전 투자 가로막아

그러나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건설현장의 저가 입찰 구조가 안전 투자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결국 낮은 가격에 수주를 하게 되면 안전 비용을 줄이고, 인력도 충분히 투입할 수 없게 된다. 공사기간 역시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 공사가 길어질 수록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공사 속도를 높이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공공공사에선 정책 판단에 따라 무리한 준공 시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가덕도 신공항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대건설은 안전 확보를 위해 부지 조성 기간을 84개월에서 108개월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끝내 컨소시엄에서 이탈했다.

한 중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실 국내 건설산업이 저가 입찰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그만큼 안전 쪽에 비용 투입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며 "이 같은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공사에만 책임을 묻는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장은 "국내에서는 시공사에만 책임을 묻지만, 해외에서는 발주처도 책임을 진다"며 "발주자가 안전 비용을 직접 고려하도록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위험의 외주화? 이념이 현실 삼켜...제도권서 관리 필요"

하도급도 개선해야 할 문제다. 정부는 하도급을 '위험의 외주화'로 규정하지만, 현장에서는 하도급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이 다양하고 한 회사에서 모든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로 하도급을 악마화하고 있는데, 이념이 현실을 삼킨 것"이라며 "하도급은 제도권 내에서 법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인데, 금지를 하면서 음성화되고 사각지대에 노출되면서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꼬집었다.

안홍섭 회장 역시 "하도급은 효율 차원에서 필요하며, 건설업에는 많은 공정이 있는데 이를 한 회사에서 모두 담당할 만한 인력을 보유할 수 없다"며 "이 과정에서 위험을 줄이고 싶다면 하도급 비용을 크게 높이거나 불법 하도급을 제도권 내로 편입시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과도한 서류 작업 등 불필요한 행정 부담이 늘면서 현장의 안전관리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건설현장 안전 조치를 증명하는 과정이 법상 너무 세세하게 규정돼 있어 현장을 돌며 안전관리를 해야 할 사람이 서류 작업에만 매달리게 된다"며 "법이 사고를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범 100일을 맞은 이재명 정부는 강력한 처벌과 무관용 원칙으로 건설현장 경각심을 높였다. 전문가들은 단순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저가 수주와 하도급 구조 등 산업 구조 개선이 병행할 때 비로소 실질적인 산재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향후 정책 추진에서도 강경 대응과 구조적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wns83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