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월세화 흐름이 빨라진 이유 [박원갑의 집과 삶]

서울 시내 한 부동산에 붙어있는 월세 안내문. /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 주택 월세화 속도가 매섭다. 올해 들어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이 60%를 넘어서면서 임대차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해외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월세살이가 이제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온 셈이다. 이 즈음해서 의문이 생긴다. 주택의 월세화 현상이 왜 이렇게 급속도로 진행될까.

첫째, 최근의 월세화는 전셋값 급등의 후폭풍으로 나타난 것 같다. 말하자면 전셋값이 크게 오르니 월세로 임대료 일부를 지급하는 세입자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7월 현재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2년 전보다 10.5% 올랐다. 세입자는 다른 집으로 옮기기보다 5%만 인상하고 2년 더 거주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재계약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집주인이 인상된 금액을 월세로 받으려고 한다. 보증금을 받아 은행에 예치하는 것보다 수익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결과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이율인 전월세 전환율이 서울 아파트 기준 연 4.7%(전국 5.3%)에 이른다. 시중은행 1년짜리 정기예금(연 2.49%)보다 훨씬 높은 셈이다.

세입자도 보증금을 올려주는 게 저렴할 수 있지만 집주인이 후순위 대출을 받은 경우가 있어 선뜻 내키지 않는다. 즉 집주인의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세입자의 위험 회피 심리도 월세화를 재촉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 빌라 전세 사기는 월세화 흐름에 메가톤급 영향을 미쳤다. 전세는 공간을 빌리는 대가로 집주인에게 사적으로 금전을 빌려주는 사금융 성격이 강하다. 빌라 전세 사기 여파로 비(非)아파트 시장에선 전 재산을 잃은 세입자가 늘면서 전세 기피 현상이 생겨났다. 그래서 전세보증보험을 받아 빌라 전세를 계약하기도 하지만 아예 월세살이를 선택하는 세입자가 많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빌라 전세 수요는 그나마 깡통전세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아파트로 이동했다. 이 같은 아파트 전세 쏠림 현상은 깡통전세 트라우마에 따른 생존본능이 작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아파트 전세로 이사 가려고 해도 가격이 빌라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이다. 7월 KB부동산시세 조사 결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평균 6억 4944만 원으로 연립주택(빌라) 2억 3327만 원의 2.8배에 육박한다.

아파트 전세에 필요한 목돈이 부족하니 보증금을 줄이고 일부를 월세로 부담하는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다. 요즘 아파트에서 월세 계약은 전면 월세보다는 준전세나 준월세 계약에 더 가깝다. 현재 준전세나 준월세는 월세로 분류된다.

셋째, 전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난 것도 월세화를 가속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한 30대 신혼부부는 "전세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좀 비싸더라도 월세살이가 낫다고 생각하는 젊은 층이 많다"고 말했다. 해외 생활을 한 사람이 늘면서 월세에 대한 저항감이 줄어든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넷째, 6·27 수도권 대출규제도 월세화 흐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주변 신혼부부를 보면 주택담보 대출 규제로 매매보다 전월세를 선택하는 세입자가 적지 않다. 앞으로 추가 대책으로 전세대출에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적용하면 월세화 흐름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전세대출이 어려우면 어쩔 수 없이 월세로 임대료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세 시대가 오면 깡통전세나 전세 사기는 없어지겠지만 주거의 고비용 구조가 고착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 샐러리맨은 월급의 30~50%를 월세로 낸다. 집세를 내고 나면 가처분소득이 줄어 살림살이가 빠듯할 수밖에 없다. 월세 시대를 맞아 월세 세액 공제나 바우처 확대, 공공임대주택 확충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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