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권에선 집값 오른다?…'학습효과'가 시장 흔든다[박원갑의 집과 삶]

서울 아파트값 주간 상승률이 0.36%를 기록해 2018년 9월 이후 가장 컸다. 사진은 19일 송파구 서울스카이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단지 모습. 2025.6.1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 진보정권에서 집값이 오른다는 통념은 과연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진보정권에서는 통화량이 많이 풀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로 집값이 오른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최근 서울 아파트값 급등세에도 이러한 '경험의 절대화' 혹은 '학습효과'가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당시 전국 아파트값은 각각 33.7%, 38.3% 올랐다. 김대중 정부 때도 38.4% 상승했다. 반면 김영삼 정부(3.2%)와 이명박 정부(15.9%)에서는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이 수치만 보면 '진보정권=집값 급등'이라는 인과관계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에서는 아파트값이 무려 70% 가까이 올랐고, 전두환 정부에서도 적지 않게 올랐다. 단순히 정권의 이념 성향만으로 부동산시장을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당시 거시경제나 금리 등 주택시장 외부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노태우 정부는 집값이 급등하자 200만호 공급대책을 꺼낸 데 이어 '3법'이라 불리는 토지초과이득세와 개발이익환수제, 택지소유상한제 등 초강도의 규제책으로 대응했다. 보수 정권은 규제를 완화하고, 진보정권은 강화한다는 생각은 항상 맞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진보정권과 집값 급등을 연결하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최신성 효과' 때문일 수 있다. 최신성 효과는 나중에 제공된 정보를 가장 잘 기억하는 현상이다.

통화량 과잉 팽창 여부도 비교 대상을 어떻게 삼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시중에 풀린 총통화량을 의미하는 M2(광의통화, 평잔 기준)를 보자. 김대중 정부(59.4%), 노무현 정부(48.2%), 문재인 정부(50.7%) 당시 M2 증가율은 이명박 정부(41.9%)보다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전 노태우 정부(197.9%), 김영삼 정부(150.9%)의 증가율에 비하면 큰 폭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은 모든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반응한다. 시장은 때로는 '자기실현적 예언'에 빠진다. 자기실현적 예언은 말 그대로 자기가 예언한 방향대로 실현되는 것이다. 부동산시장에서 개인 혼자의 자기실현적 예언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한쪽으로 예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즉 집단적인 예상 자체가 시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큰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시장참여자들이 '진보정권→통화팽창→집값 상승' 도식을 그대로 믿어버리면 실제로 비이성적 과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부동산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공급절벽 우려에 금리도 인하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과거 정부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에선 공급확대와 수요조절이라는 투트랙 카드를 병행하는 게 필요하다.

우선 공급 부족 불안 심리를 해소하기 위해 서둘러 파격적인 공급대책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공급대책을 꺼내긴 했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던 측면이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아파트값이 15.9% 상승에 그친 것은 '반값 보금자리주택 쇼크'의 영향이 컸다. 당시 정부는 강남권에 저렴한 가격으로 보금자리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로 인해 수요자들 사이에서는 굳이 기존 아파트를 비싸게 살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시장 안정에 기여했다.

지금 주택 공급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수요는 탄력적으로 움직이고 심지어 가변적이기까지 하다. 시장이 요동친다면 수요를 조절하기 위해 적절한 대출카드도 고려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정부에선 DTI(총부채상환비율), 문재인 정부에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도입이 조금 빨랐으면 집값 급등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주택시장은 투자상품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유동성이나 금리 같은 금융변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집값 불안을 막으려면 통화량 팽창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현재 M2는 4235조 원가량으로 전년 동월 대비 5.7% 늘어났다. 아직은 안정적인 수준이지만, 연평균 증가율이 10%를 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