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비위 맞추던 건설사 이젠 옛말…"더 이상 을 아냐"[수주戰]③

건설물가 상승·부동산 경기 전망 '흐림'…평당가 오르고 리스크 커지면서 몸 사리는 건설사들
전문가들 "뾰족한 수 없고 재초환 완화 등 제도 '대못'이라도 뽑아야"…양극화·공급 부족 심화 우려

<자료 사진> 지난해 7월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 공사비 갈등으로 멈춰섰던 서울 강동구 둔춘주공 재건축 현장 모습. 2022.7.7/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이젠 옛날 같은 분위기 아니에요. 수익성 안 나온다 싶으면 안 들어갑니다. 우리가 안 들어가면 더 아쉬운 건 어느 쪽이겠어요."(대형 건설사 관계자)

"시공사 교체가 쉽진 않아요. 사업 기간이 오래될수록 대출금도 있어서 상환하고 들어올 다른 시공사 찾기도 어렵고요."(수도권 재개발사업조합 관계자)

건설물가 상승으로 공사비는 오르지만 전국적인 건설부동산 경기는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면서 정비사업 주체인 조합과 시공사의 '갑을(甲乙)' 관계도 바뀌는 모양새다.

건설사는 특히 대형업체일수록 점차 본업인 주택사업 비중을 줄이고 위험 분산에 들어가는데, 조합은 한번 시작된 정비사업을 신속 추진해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해가 엇갈리면서 시공사 찾기가 어려워지거나 기존 계약 해지까지 빈번해지는데,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은 당분간 정비사업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2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수원 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5년 전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이주를 마쳤지만 대형 시공사 컨소시엄과 지난해부터 공사비 갈등을 빚다 결국 최근에서야 협상을 매듭지었다. 이미 지난해 2차 도급계약에서 공사비를 기존 대비 27% 인상했음에도 시공단은 원자재인상 및 하도급비 인상을 이유로 24% 추가 인상을 요구했고, 이에 조합이 계약 해지까지 검토하다 결국 20%를 조금 밑도는 인상률로 겨우 갈등을 봉합한 것이다.

조합 관계자는 "기간이 오래돼 이제 와서 대출금을 상환하고 들어올 다른 시공사를 찾는 건 현실적으로 힘든데 다행히 시공단에서 조금 낮추고 들어와 금액적인 협상은 거의 마무리 단계"라며 한숨을 돌렸다.

서울 노원구의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도 지난해 시공사 선정을 했지만 이달 초 계획한 공사비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 협상 초반엔 시공사의 공사비 인상 요구가 부당하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올초 곳곳에서 발생한 입주 지연이나 시공사 계약 해지 사태에 조합 집행부도 난감하다. 앞서 공사비 인상 이슈로 시공사와의 계약 해지라는 초강수를 둔 경기 산성재개발조합은 지난 20일 시공사 재선정을 위한 입차에서 응찰자를 찾지 못했다.

시공사 선정은 모집공고→현장설명회→입찰 마감→참여 시공사 합동설명회→시공사 선정 순으로 진행된다. 입찰 마감 단계에서 2개의 시공사가 참여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통상 시공사와 조합 간엔 뚜렷한 갑을관계가 있다기보단 엎치락뒤치락하는 신경전이 있었다. 다만 과거엔 시공사 선정 전까지 조합의 기세가 등등하다 선정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면, 요즘은 아예 시공사 선정 전부터 난항을 겪기도 한다.

서울 양천구의 한 재건축조합은 지난 16일 시공사 선정에 나섰지만 응찰자가 없어 유찰돼 오는 26일 두 번째 현장 설명회를 열 예정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영등포구에서는 다섯 번이나 시공사 선정 입찰이 유찰된 사례까지 나왔다.

건설사가 정비사업 수주에 몸을 사리는 건 코로나19 이후 커진 불확실성과 변동성으로 공사비 인상 요인이 계속돼서다. 원자잿값 급등을 야기한 우크라이나 전쟁도 계속되는 데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도 예고됐다.

가뜩이나 '경기를 타는' 업종인데 1~2년 뒤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자 덜컥 계약하긴 부담스러워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건설 비용은 1~3%만 변동률이 생겨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괜히 어설프게 수주하느니 안정성과 수익성을 중심으로 '선별수주'를 할 수밖에 없다는 토로가 나온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지난해 11월 148.84(2015년=100)에서 올해 1월 150.84, 2월 150.99로 꾸준한 오름세다. 건자재 생산자물가지수(2015년=100)도 마찬가지다. 철근의 경우 작년 12월 189.18→지난달 190.43으로 올랐고, 같은 기간 레미콘은 125.90→129.69, 시멘트 142.54→149.31 등으로 올랐다. 슬래브 물가지수는 작년 12월 178.85에서 올해 4월 200.90까지 급등했다 지난달 178.53으로 내리며 큰 변동 폭을 보이기도 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평(3.3㎡)당 공사비는 750만~800만원을 넘는다"며 "공공도 평당 600만원 정도는 드는 걸로 안다. 또 조합이 고급자재를 요구하면 1000만~2000만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압구정·여의도·목동 등 한강 변 재건축을 둘러싼 핵심 이슈인 초고층화도 공사비 인상을 수반한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철근 두께와 하중이 커지고 안전율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사는 이제 '돈이 되는 것', 만들면 '완판'되고 비싸게 팔릴 사업만 하려 하고 조합은 추가 분담금을 줄이는 게 핵심인데 기본적으로 공사비 중재기구를 두기도 어렵고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를 가진 대형 건설사는 저마다 '신성장 동력 찾기'를 명분으로 사업다각화에 나서며 주택사업 비중을 줄이는 추세다. 올해 1분기 10대 건설사의 도시정비사업 신규 누적 수주액은 5조5242억원으로, 작년 1분기 6조7786억원보다 약 33% 줄었다.

이 연구위원은 "공사비 이슈에 따른 수익성 감소로 신규택지뿐만 아니라 정비사업에서도 착공이 줄면 향후 시장 수요가 높은 신축 아파트 수요-공급 불균형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현재 시공사가 부르는 공사비와 조합이 용인하는 단가 차이가 좁혀질 정도로 큰데, 문제는 단순히 공사비 증액의 차액만이 아니다"라면서 "시공사 입장에선 평당가 상승에 따른 분양가 인상과 그에 따른 시장 상황 부담이나 자금조달 금리 같은 리스크가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 법안 등 규제정상화 트랙이 세워졌는데 아직도 법제화가 되지 않은 리스크도 있다"며 "건설사가 그런 리스크를 감내할 정도의 도급 공사비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재건축 사업이 갖고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ab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