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찮은 평가에 돌연 사퇴…'코레일' 잔혹사 뒤엔 기재부 '손질?'

코로나 방역 1등공신 손병석 사장, 기관장평가 E등급에 돌연 사임
관계없는 감사결과 공개에 기재부 '입김' 절반 평가단…"요식행위 불과"

손병석 한국철도 사장이 폭염 전 시설점검 중인 모습 ⓒ 뉴스1

(세종=뉴스1) 김희준 기자 = 지난 2일 돌연 사의를 표명한 손병석 한국철도(코레일) 사장의 퇴진을 두고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강한 CEO 평가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사실상 정부의 퇴진 종용 메시지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여기에 코레일을 평가한 심사위원 절반가량이 기재부 출신과 관련 단체 출신으로 채워져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1조 손해에도 코로나 방역 올인한 코레일 사장, 경영평가는 E등급?

12일 국회와 철도업계 등에 따르면 손병석 코레일 사장은 회사 적자가 누적되는 경영상황과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나타난 경영관리 부문 성과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다. 그는 앞서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에 사의를 전달했으며, 청와대에서도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 사장의 전격 사퇴의 표면적인 이유는 최근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 중 경영관리 분야에서 최하 수준인 E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경영관리 분야는 리더십, 윤리 경영 등의 지표로 평가받는다.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 CEO에겐 신임과 불신임을 나타내는 신호와 같다.

지난해 경영성적을 바탕으로 한 코레일의 평가가 C등급인데, 기관장의 평가가 그보다 낮은 E등급이라면 사실상 퇴진을 요구하는 간접적인 정부의 의사로 볼 수 있다.

정부 안팎에선 코레일에 지난해 코로나19로 승객이 급격히 줄면서 1조원대 적자를 기록한 점이 주요했다고 본다. 하지만 그 이면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2인석인 승객좌석을 자발적으로 창측 좌석만 판매했다는 점이 간과됐다.

승차권의 판매수익이 크게 줄었지만, 1일1회의 객실방역 원칙을 준수하면서 코레일 차내 코로나 감염이 지난 2년간 거의 전무한 수준을 유지했다.

해마다 되풀이됐던 코레일 노조의 장기파업도 손 사장이 경영평가 E등급을 맞은 지난해엔 불과 일주일 남짓의 태업에 머물렀다.

오랫동안 손대지 못했던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특히 입사 당시 배정받은 작업장을 퇴사때까지 바꾸지 못했던 관행을 혁파해, 불필요한 직장 내 도제식 문화를 없앴다. 최근엔 직장 내 선임의 악질적인 갑질행위에 대해 최초로 '해임' 조치를 결정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했다.

그러나 기재부가 주관한 기관장 평가는 달랐다. 국회 관계자는 "최초 심사의 분위기는 낙관적이었지만, 갑작스럽게 감사원에서 코레일이 기재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경영평가성과급을 과다지급했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하며 이 사실이 곧 심사위원들에게 알려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규정의 산정기준 적용 문제는 전임 오영식 사장이 있던 2018년 6월의 일이다. 결국 기재부가 지침을 일찍 바꿨으면 논란조차 일어나지 않을 문제인 데다, 감사원이 지적한 2019년도 손 사장의 경영평가 시점인 2020년과는 동떨어진다. 2020년과는 하등 상관없는 조사결과를 하필 경영평가 기간 중에 공개한 셈이다.

전국철도노조 등 민주노총 대전본부가 8일 국가철도공단 및 한국철도(코레일) 대전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도통합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 News1 김종서 기자

◇경영평가 압박엔 기재부 '총대'?…평가단장부터 기재부 퇴직관료

정치권에선 손 사장의 퇴진은 사실상 정해진 수순이었고, 기재부가 '총대'를 멨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기재부가 주관하는 기관평가에서 감사원이 공개한 지적사항의 주제가 결국 기재부의 지침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코레일의 기관평가를 담당한 심사위원단장을 비롯한 핵심인원이 대부분 기재부 출신 또는 기재부 관련 단체 출신"이라고 귀띔했다.

코레일의 기관평가를 담당한 공기업1군 평가단 단장은 박춘섭 교수로 기재부 예산실장과 조달청장을 지낸 사실상 기재부 퇴직관료다. 2019년부터 참여한 유승원 경찰대 교수도 기재부 재정정책국 예산실 서기관 출신으로 경영관리 간사를 맡았다. 이밖에 문병결 성균관대 교수도 기재부 출신이다.

기재부 관련 학회로 분류되는 한국정책학회, 재무행정학회, 한국회계학회 출신 교수도 대거 포진했다. 전체 심사위원 중 절반 가까이 기재부 출신이거나 기재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위원들로 꾸려진 셈이다.

공기업 관계자는 "올해는 처음으로 공공기관 기관평가 과정에서 계산오류까지 나왔을 정도로, 신뢰성이 바닥이란 소문이 나돈다"며 "손병석 사장이 앞서 정부에서 오랫동안 관료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기재부가 주관한 '미묘한' 기관장 평가가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철도업계에선 손 사장 퇴진 이후 코레일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유독 선거철을 앞두고 노조파업 등과 같은 정치적 부침이 심한 코레일에 수장까지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손 사장이 작업장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갑질에 중징계가 가능하도록 한 것은 코레일 노조가 아닌 코레일 '직원'을 위한 사전 수순"이라며 "하지만 CEO가 부재한 상황에선 그동안의 개선안이 원점복귀될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h99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