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으로 일단 2년 살아봐?…'애프터리빙'의 함정

전세 아닌 분양계약…구입 거부하면 이자 대납
건설사 자금난 겪으면 계약 불이행 위험도
불완전판매 줄이기 위한 설명 의무화해야

2일 오후 서울 신천동 부동산 밀집상가에 전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는 2억8천201만 원으로 1년새 천500만 원 가량 올랐고, 전국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도 1년 전보다 약 천200만 원 상승한 1억6천513만 원으로 집계됐다. 2013.10.2/뉴스1 © News1 손형주 기자

(서울=뉴스1) 전병윤 기자 = #서울 영등포 당산동의 한 아파트 주민 60명은 2011년 모 건설기업이 2년 뒤에 아파트를 되팔아준다는 약속을 믿고 분양계약을 맺었다.

건설사는 주민들 명의로 중도금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에 대한 이자는 담보대출 발생 2년 후부터 전매를 완료하기 전까지 건설사가 대납하기로 했다. 이들은 모두 올초 건설사에 아파트를 되팔아 줄 것을 요구했지만, 건설사는 아파트를 당장 팔긴 어렵다고 했다. 계약서에 '전매 신청에 대해 적극 협조한다'고 돼 있을 뿐 아파트를 되팔아줄 책임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에 사는 김씨도 전세 계약기간이 끝날 시점이 다가오자, 새로운 집을 알아보던 중에 '분양금의 15%만 내고 2년 동안 살아본 뒤 결정할 수 있다'는 현수막을 보고 분양 대행사를 방문했다. 치솟는 전셋값에 근심이 많던 김씨에겐 그야말로 희소식이었다.

김씨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계약에 사인을 한 며칠이 지나서야 2년 뒤 아파트를 구입하지 않으면 건설사가 대신 납부한 이자를 제외한 금액만 중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김씨는 "결국 아파를 구입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2년 안에 나머지 잔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셋값이나 계약금만 내고 2~3년간 전세처럼 들어와 살다가 분양을 받기 싫으면 보증금을 돌려받고 나갈 수 있는 전세형 분양제 이른바 '애프터리빙'의 피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2011년부터 본격 도입된 애프터리빙의 계약 만기가 다가오면서다. 프리리빙제·리스크프리·저스트리브·스마트리빙제·신나는 전세 등 명칭은 다르지만 골자는 비슷하다.

건설사가 관리비를 대신 내주고 분양면적에 따라 많게는 매달 100만원 가량의 생활비까지 제공하는 곳도 있다. 발레파킹·요트클럽 이용·헬스클럽 개인강습 무료 등 각종 편의도 파격적으로 제공하며 계약자의 구미를 당긴다.

건설사들은 비어있는 미분양 아파트를 채울 수 있고 계약금과 중도금 대출을 통해 한 채당 수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세형 분양제'는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계약을 진행하는 일종의 '불완전 판매'에 대한 위험을 안고 있어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태원 의원(새누리당, 경기 덕양을)은 인터넷과 건설사·모델하우스 등의 현장 조사를 통해 올해 10월 현재 전국의 25개 아파트 3만2541가구에서 애프터(프리)리빙 등 전세형 분양제 마케팅을 활용해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분양을 완료한 곳을 합치면 전세형 분양제로 입주한 가구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태원 의원은 "전세형 분양제가 전세처럼 산다고 하지만 실제 계약방식은 임대가 아닌 분양계약이며 건설사가 입주자 명의로 금융사에서 한 채에 수억 원의 중도금 대출을 받아 부족한 자금을 임시 융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년이 지난 뒤 입주자가 분양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자금 여력이 부족한 건설사는 계약자의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며 "계약자가 분양을 받지 않으면 계약기간 동안 건설사가 대납한 이자나 취득세 등을 반납해야 한다거나 아파트의 감가상각(원상복구)이나 추가적인 위약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분양계약인 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생애최초로 주택을 구입한 경우라면 앞으로 저리의 대출이자 적용이나 취득세 면제 등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의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이미 자격을 잃게 되는 문제도 생긴다.

이처럼 전세형 분양제는 꼼꼼히 살펴봐야 하지만 최근엔 홈쇼핑에도 등장하면서 불완전 판매의 우려를 높이고 있다.

김 의원은 "전셋값을 갖고 있으면 그 돈으로 중대형 면적의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 정작 홈쇼핑 측은 일체의 법적책임은 사업자에 있으며 이를 책임지지 않는단 문구를 슬그머니 덧붙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측이 전세형 분양제로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는 경기 김포와 인천 송도 인근의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상담을 해본 결과 분양대금의 20%만 내면 2년간 내 집처럼 살게 해준다는 조건의 홍보물로 상담을 하고 있었다.

상담직원은 "4억~6억원이나 하는 아파트를 살아보지도 않고 구입하는 건 불합리하며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세처럼 다른 집으로 가면된다"며 "중도금에 대한 대출이자와 나머지 비용을 건설사에서 내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고 설명했다고 김 의원측은 주장했다.

전세형 분양제의 마케팅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에도 국토교통부는 실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7월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주택은 6만7672가구이며 수도권은 3만5326가구다. 국토부는 전국의 미분양주택이 줄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이 통계에는 전세형 분양제로 빈집을 채운 것이 포함돼 있다. 김 의원은 "정부가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이유로 전세형 분양제와 관련된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전세형 분양제와 관련된 정부 지침조차 없다보니 시공사·시행사·분양 대행사들이 애매한 조항과 소비를 현혹하는 문구를 약정서나 특별계약서에 넣어 유혹하고 있다"며 "정부는 건설사에게 계약 체결시 환매의 방법 등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면 벌칙을 부여한다거나 사업시행자에게 '임대주택법'에 따른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게 해 임차인을 모집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yj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