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주택거래절벽…'반전세'로 내몰리는 세입자
[답 없는 전세시장上] 8.28대책 이후 전셋값·집값 동반상승…무주택 서민들 시름
- 임해중 기자
(서울=뉴스1) 임해중 기자
#1.서울 동작구 사당동 L아파트(전용 84㎡)에 사는 김길훈(39)씨는 최근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2년 전 3억5000만원에 전세 들었던 집인데 집주인이 전세금을 4억원으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김씨는 "전셋값이 너무 올라 집을 살까도 고민해봤다"며 "전세금을 더해도 집을 사려면 3억원 정도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자가 걱정이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씨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전용 84㎡) 매매가는 6억5000만원 정도로 금리 3.5%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20년 동안 매달 170만원 이상을 원리금으로 상환해야 한다.
#2.강남구 역삼동 인근 A공인중개소에는 추천 임대매물 중 70% 이상이 월세와 반전세다. 이 중개소에 나온 임대매물 27개 중 19개가 보증부월세로 임대료는 아파트의 경우 보증금 2억원에 월 150만∼200만원, 빌라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 70만∼80만원 선이다. 이 중개소 대표는 "최근 전셋값이 오르자 목돈을 마련할 길이 없는 세입자들이 오른 전세금만큼 월세로 돌리는 경우가 늘었다"며 "보증금 5000만원을 월세로 돌리면 30만원 정도를 매월 부담해야 돼 서민들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무주택 서민들 시름이 커지고 있다. 8·28대책 이후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상승하고 있는 영향이다. 정부는 당초 전세수요가 매매로 갈아탈 것으로 기대했지만 관련법 국회처리 지연으로 거래절벽만 심화됐다. 오른 호가에 수요자들이 매매로 갈아타지 않다보니 전셋값만 치솟았다. 정부대책이 유주택자들과 거래견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갈 곳 없는 전세난민들은 마른침만 삼키고 있다.
8일 만나본 김씨 역시 오른 전셋값 부담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상도동과 노량진 인근 아파트 수십 곳을 알아봤지만 전세매물은 씨가 말랐다.
그나마 나온 같은 크기의 전셋집도 4억원을 넘어 현재 가진 돈으로는 계약이 쉽지 않다. 한 달간 전셋값이 1500만∼2000만원 정도 올랐다는 공인중개소 관계자 설명을 들으면 한숨부터 나온다.
김씨는 "말이 전월세대책이지 무주택 서민을 위한 대책은 없다"며 "아이들 교육비와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생활비를 감안하면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것도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다소 여유가 있는 전세세입자들이 매매로 전환되면 수요가 감소해 전월세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게 정부 논리인데 그만큼의 수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도 8·28대책 이후 집값은 반등했는데 거래는 오히려 줄어드는 등 당초 정부 의도와는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호가를 올린 매물이 거래가 이뤄지면 시세는 오른 것으로 집계 돼지만 매도가와 매수가 격차가 벌어지며 거래건수가 줄어든 것이다.
실제 역삼동 A공인업소에는 지난 한 달간 매매계약이 한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취득세율 영구 인하를 위한 지방세법과 소득세법 개정안 국회처리가 미뤄지며 관망세가 짙어졌다. 집주인들은 매물가를 올리는 반면 매수자들은 급매가격을 원하다보니 거래자체가 끊겼다.
거래경색과 천정부지 치솟는 전셋값이 세입자들을 옥죄자 반전세 계약도 눈에 띄게 늘었다. 현재 월세 시장에서 매달 내는 월세 비중이 '보증금의 0.5% 미만'인 경우는 전체 거래의 26.3%를 차지한다. 이 계약 형태는 2010년 전체 월세 거래의 21.5%를 차지했지만 2년 사이 4.8%포인트 늘었다. 보증금 비율이 높은 보증부 월세 거래가 늘어난 영향이다.
역삼동 A공인중개소와 마찬가지로 흑석동 L공인중개소에 나온 임대매물 중 60% 이상이 월세다. 월세가 전세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다보니 집주인들도 전세를 보증부 월세로 돌리고 있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저금리 기조로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강해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전셋값 상승 부담이 월세시장으로 전가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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