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수어통역사 박지연 "차별받지 않는 세상 꿈꿔…李대통령, 농맹인 만나주길"

[인터뷰] "수어통역사 靑 상주…농인 사회의 오랜 염원이었다"
"농인 고용 현실 열악…농인들이 어딜 가도 의사소통되는 세상 되길"

박지연 수어통역사가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남준 대변인의 브리핑 발언을 수어통역하고 있다. 2026.2.10 ⓒ 뉴스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임윤지 김근욱 기자

"청와대에 수어통역사가 있는 것만으로도 농인분들에겐 '우리 소외받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감사함, 드디어 청와대에서도 수어통역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좋았습니다."

청와대 브리핑 화면에서 대통령과 참모진의 말을 손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 청와대 수어통역사 박지연 씨다. 그는 "청와대에 수어통역사가 상주하는 것 자체가 농인들에게는 큰 의미"라고 말했다.

박 통역사는 원래 외교관을 꿈꾸며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그러나 스무 살 무렵 우연히 농인들이 운영하는 바자회에 참여하면서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는 "'소리가 어떻게 안 들리는 세상이 있을까'라고 단 한 번도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분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장애인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수어를 익혔다. 농인 부모를 둔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유아교육으로 전공을 바꿔 보육교사 자격을 취득했고, 장애 통합 어린이집에서 교사와 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수어통역사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은 2008년 국회방송에서 시작됐다. 그는 "처음에는 자격증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돈을 받고 통역을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던 시절이라 거의 봉사에 가까운 활동을 했다"며 "농인들과 함께 지낸 시간이 10년이 넘는다"고 말했다.

이후 방송 통역을 이어오며 정치 현안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약 20년 가까이 국회와 방송 현장에서 통역을 해온 그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수어통역사로 발탁됐다.

박 통역사는 "청와대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며 "수어통역사가 청와대에 상주하길 바라는 건 농인 사회의 오랜 염원이었는데, 그 변화의 한가운데 서게 돼 놀랍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농인들이 더 쉽게 대통령 메시지 접할 수 있는 환경 필요"
박지연 수어통역사가 10일 청와대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2.10 ⓒ 뉴스1 이재명 기자

청와대 수어 통역은 국회나 방송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 따른다. 그는 "국회는 상임위나 정치 구도에 따라 발언 흐름이 어느 정도 예측되지만, 청와대는 모든 현안이 처음 다뤄지는 자리라 그 점이 가장 어려웠다"며 "처음 한 달은 수석님들의 발언 스타일과 정책 분야를 공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고 전했다.

현재 청와대에서 수어통역사는 박 통역사 한 명이다. 그는 "통역은 원래 1시간 이상 혼자 하는 것이 어렵지만, 현재 브리핑은 시간상 큰 무리는 없다"며 "앞으로 생중계가 확대되면 인력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일하며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으로는 브리핑 연단 개선을 꼽았다. 그는 "처음에는 연단 높이가 고정돼 있어 휠체어 이용자나 장애인이 사용하기 어려웠다"면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연단을 제안했고 실제로 설치됐다"고 말했다.

다만 아쉬움도 있다. 청와대 생중계 브리핑이 KTV를 중심으로 중계되다 보니 농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는 "방송 채널 번호가 지역마다 달라 찾기 어렵고, 다른 방송사에서는 통역 화면이 잘리는 경우가 많다"며 "농인들이 더 쉽게 대통령 메시지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역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 전달'이다. 예를 들어 줄임말이나 낯선 용어, 신조어가 등장할 경우 농인 사회에서 통용되는 표현을 찾거나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그는 "수어는 단어 하나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들어진다"며 "새로운 표현이 나오면 농인들이 서로 공유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인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강조했다. 특히 고용 분야에서 청각장애인, 그중에서도 농인의 처지가 가장 열악하다고 했다.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면접 단계에서부터 탈락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소음이 큰 공장이나 위험한 작업장으로 내몰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손가락 절단 등 산업재해를 겪는 농인도 많지만, 손이 언어의 도구라는 특수성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도 문제로 꼽았다.

"이 대통령, 농맹인 직접 만나주길…차별받지 않는 세상 꿈꾼다"
박지연 수어통역사가 10일 청와대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어로 '사랑해'라는 뜻이다. 2026.2.10 ⓒ 뉴스1 이재명 기자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농맹인(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잃은 장애인)을 직접 만나주기를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처음에는 농인이었다가 시력을 잃어 소통이 더 어려워진 분들이 있다"며 "이분들은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을 만큼 사회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님이 이런 분들을 직접 만나준다면 우리 사회에 이런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통역사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한 농인의 삶이 바뀌었던 경험을 꼽았다. 열악한 공장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던 한 농인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그는 바리스타에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그 농인은 결국 일을 그만두고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뒤 스타벅스에 취업했고, 10년 가까이 근무하며 장애인 바리스타 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박 통역사는 "그 친구가 미국 본사 임원과 함께 사진도 찍고 기사도 났다"며 "그런 순간이 통역사로서 가장 뿌듯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박 통역사는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라고 답했다. 그는 "단순히 그냥 통역사를 몇 명 늘린다는 걸로 농인의 삶이 개선되지는 않는다"며 "(수어 교육을 활성화하는 등)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본 수어를 하게 돼서 농인분들이 카페를 가건 식당을 가건 어디를 가도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이 되는 그런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immun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