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탈모'만 기억 나…대통령 업무보고 생중계 '명암'
공개 질타·격려로 공직사회 긴장감 vs 만기친람·전시행정 전락할 우려
"국민 실시간으로 보고 판단"…李대통령 '정면돌파'
- 심언기 기자, 김세정 기자
(서울=뉴스1) 심언기 김세정 기자 = 역대 정부 최초의 대통령 업무보고 생중계를 둘러싼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투명하게 국정을 공개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실현됐지만, 만기친람식 업무보고가 불필요한 논란을 양산하고 자극적 사안만 부각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치권 안팎에선 업무보고 생중계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적절히 조화시킨 절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은 굵직한 정책 줄기를 컨트롤하고 지엽적 사안은 시스템에 따르는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는 고언이다.
17일 정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부터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생중계로 진행되는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세부 사안까지 짚어가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 대통령은 밤잠을 줄여 익일 업무보고 내용을 사전 숙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업무파악이 미진하거나 향후 계획이 미진할 때는 강력한 질타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때론 공개 칭찬으로 기를 살리는 '당근과 채찍'을 능수능란하게 섞고 있다.
성남시장부터 경기지사, 당대표, 대통령까지 정치적 성장 기반이 된 '사이다 발언'은 업무보고 생중계에서도 여지 없이 재현됐다.
이 대통령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무슨 팡인가, 거기도 (법을) 막 어기잖아요"라면서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잘못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시스템 먹통에 발 빠르게 대처한 식품의약처에는 "아주 훌륭하게 잘 처리했다. 박수 쳐달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부처별 업무보고 마무리 전에는 발언 기회를 주며 평소 대통령과 직접소통이 어려운 여러 부처·기관들을 배려하는 모습도 인상깊다는 평가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윤석열은 도어스테핑 조금 하다 비판이 나오자 (잘못을) 보완하지 않고 그만뒀다"며 "투명성과 공개적 발언에 대한 책임성이 증가하고, 국민들의 반응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수용하는 자세가 있다면 좋은 것"이라고 했다.
김준일 평론가는 "'내가 개혁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계속 가져가는 측면에서 대통령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무보고 생중계의 부작용 역시 적지 않다. 불필요한 논란을 촉발하거나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 정책을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데 대한 우려가 나온다. 환단고기 언급과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 질타가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향해 "환단고기를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비하해 '환빠'라고 부르잖느냐"면서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냐"고 물었다. 주류 역사학계에서 위서로 결론 낸 환단고기를 옹호하는 듯 비칠 수 있어 역사학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논란이 확산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고대사에 대해 연구가 적으니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라는 취지의 발언"이라면서 "(환단고기 주장에 동의하면) 환빠라는 표현을 썼겠나. 전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여권에서도 "뉴라이트 기관장의 시각을 물은 것"이라고 옹호했다.
달러를 책에 숨겨 외화를 불법 반출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이학재 사장을 질타한 것도 범죄 수법을 홍보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아울러 야당 3선 의원 출신이자 인천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이 사장 공개 질타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시선도 상당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범죄를 대통령이 가르쳐줬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몇년도에 어디에서 보도됐고 1만 불 이상 (반출)했다가 걸려 보도자료를 냈다는 게 나온다"라며 "옛날부터 있던건데 뭘 새로 가르치냐. 일부가 그를 이용해 범죄하는데 쉬쉬하란 말이냐"라고 재반박 했다.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고 언급한 것도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이 대통령이 탈모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검토를 지시하면서 건보 재정건전성이 더욱 악화할 것이란 우려가 터져나왔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국토부는 부동산, 국토 종합개발 계획 이런 거 아닌 달러·책갈피만 남고, 교육부는 입시제도·불수능 문제 대신 환단고기가, 보건복지부는 탈모와 연명 치료 중단 이런 논쟁적 이슈만 국민 기억에 남았다"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 현상이 나오고, 대통령 관심 분야만 부처가 챙기는 탁상 전시행정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업무보고 생중계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대통령실 참모들도 여론을 살피며 수위 조절 등을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은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존중하면서도 지방선거를 앞둔 예민한 시점에 불똥이 튈지 몰라 마음을 졸이는 기류이다.
지자체장 선거를 준비 중인 한 여권 인사는 "탈모 얘기는 젠더와 연령대별로 호불호가 갈리고, 중도보수층에서는 국가재정 문제로 비판적 시각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직접 민주주의식 소통에 적극적인 이 대통령은 생중계 논란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중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17일 "소위 (재래식 언론이)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면서 필요한 정보만 전달하고, 아닌 건 가리고, 필요하면 많이 왜곡하고, 국민이 그것밖에 못 보니까 많이 휘둘리죠"라며 "지금은 실시간으로 보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생중계에 관한 이 대통령의 신념은 확고하다. 본인 말실수에 대한 비판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지만 일부만 발췌한 왜곡된 비난은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국무회의, 업무보고에 이어 생중계를 비롯한 국민과 직접 소통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eonki@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