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제왕적 대통령 '청와대' 탓이라는 미신

대통령집무실이 다음달 청와대로 다시 이전한다. 사진은 24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바라본 청와대 모습. 2025.11.2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2년 당선인 시절 한 말이다. 청와대라는 공간이 대통령을 제왕적으로 만든다고 판단했고 자신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에게 더 가까이 가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겼다.

실상은 역설적이다. 청와대를 떠난 대통령은 누구보다 제왕적이었다. 용산 집무실은 불통의 상징이 됐고, 지난해 12월에는 비상계엄의 전초기지로 사용됐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이 믿어왔던 명제를 스스로 반증한 채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간은 죄가 없다. 공간은 거울처럼 점유자의 마음과 태도를 비칠 뿐이다. 어쩌면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수백억 원을 들여 집무실을 옮길 때부터 그는 본질을 잘못 짚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청와대가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왕적 태도가 어떤 공간이든 제왕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 청와대다. 대통령실은 내달 중순쯤 청와대로 집무실을 이전할 예정이다. 준비 상태에 따라서 부서별로 순차 이동한다. 청와대는 지난 8월부터 개방을 중단하고 새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를 이어왔다. 보안상의 문제 등으로 대통령 관저는 내년 상반기 중 이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르면 대통령 세종 집무실이 건립될 때까지는 청와대를 사용하게 된다. 다만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세종 집무실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어 이 대통령은 임기 대부분을 청와대에서 보낼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를 규정하는 것은 이 대통령의 마음과 태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과거 대통령들처럼 권력과 밀실을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만들지, 탈권위와 소통의 상징으로 공간을 채울지는 그가 선택할 몫이다. 청와대는 그저 거울일 뿐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죄가 없다. 문제는 언제나 공간을 점유한 사람의 마음과 태도였다. 대통령의 태도와 결심이 있다면 이 공간은 국민과 가까운 공간이 될 수 있다. 이제 청와대가 다시 쓰일 시간이다.

bc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