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반하는 협상 없다" 李대통령 뚝심…中협상 앞 트럼프 결단

관세협상 쟁점사안 어제까지 평행선…정상회담 87분간 극적 타결
李대통령 "한국은 日 아냐" 배수진…트럼프 "터프 네고시에이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경주=뉴스1) 한재준 기자 = 한미 정상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정상회담에서 관세협상을 극적 타결했다.

미국은 관세율 인하 조건으로 우리 정부가 약속한 3500억 달러의 대미투자를 전액 현금투자하라며 압박해왔지만 정부의 '배수진' 전략에 우리 측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한 안을 수용했다. '국익에 반하는 합의는 않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뚝심이 통했다는 평가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9일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APEC 국제미디어센터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미 관세협상 세부 내용 합의안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 굿즈 전시품을 관람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전액 현금투자→통화스와프→분할투자…年 최대 200억불 투자로 결론

한미 양국은 3500억 달러의 대미투자를 △현금투자(2000억 달러) △조선업 협력(1500억 달러)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현금투자로 진행하는 2000억 달러는 연간 200억 달러 상한을 두고 집행하기로 했다. 200억 달러는 우리나라가 1년에 조달할 수 있는 외화 상한선으로 마지노선을 지켰다.

다만 이마저도 우리나라 입장에선 부담되는 외화 지출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되는 경우 납임 시기와 금액 조정을 가능하도록 근거 조항을 마련했다.

한미 양국이 합의한 2000억 달러의 대미투자는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5500억 달러 투자 집행 방식과 유사하다. 수익배분 구조 또한 원리금 상환 전까지는 양국이 5대 5로 나눠 갖다가 상환 이후에는 초과이익에 대해 미국과 한국이 9대 1로 배분 받는 구조다.

이같은 합의안은 애초 미국 측이 요구했던 안보다 우리 정부의 부담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오찬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정상회담 전날까지 평행선…미중회담 앞둔 트럼프 결단한 듯

그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 달러를 선불로 현금투자할 것을 요구해 왔다. 정부 협상단이 현금투자를 조건으로 한미 통화스와프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미국 측이 거절하면서 무산됐다.

이후 분할투자가 새로운 협상 카드로 떠올랐다. 다만 미국 측은 8년간 연 250억 달러의 현금 투자를 요구한 반면, 우리 정부는 10년간 150억 달러 투자 카드를 고수하면서 협상이 공전을 거듭했다. 이 때문에 2차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관세협상이 마무리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오현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3차장도 최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이번(한미정상회담)에 바로 타결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정상회담 전날(28일)까지도 양국은 분할투자 기간과 투자 규모를 놓고 평행선을 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87분간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간 최대 200억 달러씩 분할투자 하는 방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협상이 타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이 대통령 주최로 열린 만찬장에 들어서기 전 '한국과 무역 협상을 체결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다. 우리는 협정을 체결했다(We did. we reached a deal)"고 답하며 협상 타결 소식을 먼저 알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어젯밤까지도 양쪽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며 "협상이 타결된 것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 측면도 있다. 꾸준히 협상하면서 우리 쪽 상황을 설명했던 끈기도 유효했다고 본다"고 전했다.

정부 협상단은 그간 미국 측과 23차례에 걸친 장관급 회담과 실무협의를 이어오면서 한국이 수용 가능한 합리적 안을 제시해 줄 것을 집요하게 주장해 왔다. 이 대통령 또한 지난 27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일본이 아니다"라며 미국 측이 합리적인 안을 수용해줄 것을 거듭 요청한한 바 있다.

한미 관세협상이 극적 타결된 것에는 중국과의 관세협상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부담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국과의 협상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의 딜을 먼저 해결하고 싶지 않았겠냐"고 해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트럼프 "터프 네고시에이터"…23차례 협상 '끈기' 통했다

정부 협상단은 그간 미국 측과 23차례에 걸친 장관급 회담과 실무협의를 이어오면서 한국이 수용 가능한 합리적 안을 제시해 줄 것을 집요하게 주장해 왔다. 이 대통령 또한 미국 측이 합리적인 안을 수용해줄 것을 거듭 요청해 왔다.

최근 싱가포르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인위적인 시한에 맞추기보다는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며 APEC이라는 시점에 맞춰 무리한 안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흔들림 없이 '국익 우선' 기조로 협상을 이어 온 '버티기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 앞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터프 네고시에이터'(tough negotiator)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만큼 정부 협상단이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터프 네고시에이터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계속 알리면서 협상을 이어왔다"며 "그 부분이 관세협상 타결에 가장 유효한 측면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한미 정상은 한국의 국방비 증액과 우라늄 농축 및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대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한국의 핵추진 재래식 잠수함 도입 등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안보 협상은 팩트시트 조정을 마친 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hanant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