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자주파·동맹파의 한가한 권력 다툼
- 한재준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문재인 정부 초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기획재정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간의 논쟁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장 정책실장은 과감한 정책 추진을, 김 부총리는 신중한 접근을 각각 주장하며 불협화음이 생겼다.
청와대와 정부 간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경제정책 투톱은 공개적인 메시지를 거침 없이 쏟아내며 불화를 키웠다. 문 대통령 앞에서 언쟁을 벌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팀워크를 맞추라'라고까지 했지만 두 사람의 신경전은 지속됐고 결국 대통령은 정책실장과 부총리를 모두 교체했다. 경제 투톱의 권력 다툼이 남긴 건 소득주도성장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뿐이었다.
이같은 대통령실-정부 갈등이 최근 이재명 정부에서도 재현되는 양상이다. 20년 전 자주파·동맹파 논쟁이 비화하면서다. 동맹파로 분류되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조현 외교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필두로 한 자주파가 그 당사자들이다.
자주파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대통령이 앞으로 나갈 수 없도록 붙드는 세력이 있다. 이른바 동맹파들이 너무 많다"고 공개 저격한 뒤로 외교·안보 정책을 둘러싼 엇박자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제시한 대북 정책인 E·N·D 이티셔티브에 대한 해석 차가 대표적이다. 정 장관은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우선순위가 있다고 주장한 반면 위 안보실장은 선후관계가 없는 '서로 추동하는 관계'라고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은 공개석상에서 대통령실 입장과 배치되는 '남북 두 국가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위 안보실장이 "국제법적 측면에서 얘기하는지 모르겠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급기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여 멤버에 대한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정 장관은 지난달 말 고위당정협의회에서 NSC에 안보실 1·2·3차장이 참석하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도 자주파·동맹파 같의 세력 다툼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정책 기조로 못박았다. 국익을 지킬 수 있다면 방법론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의지다. 3500억 달러의 대미투자를 둘러싼 한미 관세협상과 남북관계 개선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거대한 숙제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해묵은 파(派) 논쟁은 한가롭다.
다같이 힘을 합쳐 해법을 모색해도 부족할 판에 공개석상에서 상대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는 저의는 소신이 아닌 권력 욕심으로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실사구시 의지를 탁상공론으로 끌여들여 정책의 신뢰성을 해치는 일이 다시 발생해선 안 된다.
hanant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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