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첫 사면과 달랐던 李대통령…'정치인 최소화' 깨졌다

조국·윤미향·최강욱 등 정치인 대거 사면…보수 진영 홍문종·심학봉 포함
공정성 해친 사면권 남용 논란…"언젠가 해야 할 일" 정면돌파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 받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16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 구치소로 수감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4.12.16/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와 윤미향 전 의원 등 정치인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역대 정부가 첫 사면에서 정치인 사면을 자제했던 것과 사뭇 다른 결정으로, 사면권 논란에도 언젠가 직면할 '사면 청구서'를 집권 초기에 털고 가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조 전 대표 등이 포함된 83만 6687명 광복절 특별사면안을 재가했다.

광복절 특사 명단에는 조 전 대표와 부인 정경심 씨, 윤미향·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 조희연 전 서울시 교육감 등이 대거 포함됐다. 친문(친문재인)계 정치인에는 윤건영 민주당 의원,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이 이름을 올렸다.

대통령실은 첫 사면을 발표한 후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은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요구에 부응하고, 민생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한 법무부의 사면안에 공감했다"고 전하며 "이번 조치가 대화와 화해를 통한 정치복원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회적 통합과 분열 혹은 갈등의 계기가 됐던 상징적 인물에 대해 사면을 통해서 사회적 결합과 화해, 대통합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 사면"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당장 사면권 남용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자녀입시비리 등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윤 전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최 전 의원은 조 전 대표 아들에게 허위 인턴확인서를 써 준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보수진영 정치인으로는 홍문종·정찬민·심학봉 전 의원 등이 포함됐다. △정 전 의원은 용인시장 시절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 7년 △홍 전 의원은 교비 횡령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 △심 전 의원은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 4년 3개월을 선고받았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8·15 광복절 특별 사면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2025.8.11/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이재명 정부가 첫 특별사면부터 정치인을 대거 포함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무리 특별사면권이 법률과 재판의 한계를 보완하고 사회 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이라지만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정치인의 형벌을 면제해 주는 것이라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조 전 대표의 경우 형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시점이라 이재명 정부의 '공정성' 논란까지 점화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의 첫 특별사면에는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정치인이 포함된 경우가 드물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3월 취임 기념 첫 특사로 3만 2739명의 특별사면과 16만 6334명의 징계 사면을 단행했다. 비전향 장기수 등 민생 사범 사면에 초점을 맞췄고 정치인이나 경제인은 배제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 취임 기념 첫 특사 때 시국·노동 사범을 중심으로 사면·복권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6월 취임 100일 기념 첫 특사로 불우수형자와 생계형 운전자 등에 초점을 맞췄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도 각각 2014년과 2017년 주로 생계형 민생사범을 대상으로 첫 특사를 단행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첫 사면에서 경제 활성화와 노사 통합을 기조로 정치인의 특사는 최소화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5.8.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李대통령, 조국 사면 지금이 적기라 판단한 듯…文 전 대통령도 요청

이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 대한 사면은 언젠가 직면해야 할 '청구서'라는 측면에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부터 친문(친문재인)계 여권 의원까지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 지원에 나섰던 혁신당과의 관계도 걸려 있다. 조 전 대표에 대한 사면을 연말로 미룰 경우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이 가중되는 측면도 있다.

박용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언젠가 해 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그래서 논란이 있겠지만, 정권 초기에 그 강을 건너버리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판단한 것 같다. 원래 12일 국무회의에서 결정날 줄 알았는데 하루 당겨서 하는 것도 논란을 빨리 종결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 전 대표에 대한 이 대통령의 '동질감'도 결정에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검찰 보복 수사의 피해자'라는 경험과 정치적 프레임을 조 전 대표와 공유하고 있다. 조 전 대표에 대한 사면 거부는 전임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보복이라는 틀을 흔드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도 있다.

한편 야당은 이재명 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두고 "국론 분열의 씨앗이 되는 사면"이라며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해 왔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이재명 정권은 내 편 무조건 챙기기, 내 사람 한없이 감싸기식 사면으로 축제가 아닌 치욕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그 어떤 비리 정치인에 대한 사면에도 반대한다"고 했다.

bc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