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우리 군, 광복 후 태동"…역사논쟁 속 주목

'국군 뿌리' 해방 후 규정…문 전 대통령 "광복군 편입해야" 겨냥 해석도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 중 메시지…윤석열 정부 '역사관' 선명성 포석?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사열하고 있다. 2023.9.26/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광복 후 제대로 된 무기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동한 우리군(軍)"이라며 국군의 뿌리를 1945년 해방 이후로 규정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다.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로 '역사 논쟁'이 불붙은 가운데, 윤 대통령이 건국절 논란에 뛰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광복 후 제대로 된 무기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동한 우리 군은 이제는 적에게는 두려움을 안겨 주고, 국민에게는 신뢰받는 세계 속의 강군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태동'(胎動)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국군의 뿌리가 1945년 8월15일 광복 이후에 시작됐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그간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는 역사관을 드러내 왔다.

'국군 뿌리'를 어디에 둘 것이냐는 물음표는 '건국절 논쟁'과 함께 정치권과 학계가 오랫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한 난제로 남아 있다. 우리 군은 해방 직후인 1946년 1월15일 준군사조직으로 창설된 '국방경비대'가 국군의 모체이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진정한 건군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국군의 뿌리를 1940년 9월1일 창설된 '한국광복군'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국군의 뿌리도 임시정부의 정식 군대인 '한국광복군'이라는 논리다.

윤 대통령의 '국군이 광복 후에 태동했다'고 한 메시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4년 전 현충일 추념사 발언을 겨냥했다는 관측도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김원봉이 이끈 조선의용대를 거론하며 국군의 뿌리가 광복군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6월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취임 첫해인 2017년 8월 국무회의에서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도 언급한 바 있는데, 당시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군의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로 바꿔야 한다"며 '국군의 날 기념일 변경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로 역사 논쟁이 재점화하자, 윤 대통령이 국군의 뿌리를 '해방 이후'로 규정하는 메시지를 발신, 현 정부의 역사관을 분명히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육군사관학교의 정신적 뿌리'를 묻는 질문에 "미군정 시절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라고 답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최큰별 소령에게 보낸 친서에 "육군사관학교의 역사적 뿌리는 100여 년 전 신흥무관학교에 이른다"고 한 발언을 부정한 것이다.

이에 이종찬 광복회장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방부 장관이란 사람이 '군의 원조가 어디냐' 하니까 일본놈 잔재들이 모여 만든 국방경비대라고 하고, 이것 참 큰일"이라고 비판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서는 "홍범도 장군을 공산당이라고 뒤집어씌우면 안 된다"고 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