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어민 북송 놓고 신·구 권력 정면충돌…정국 소용돌이로

정의용 입장문 내자 대통령실 즉각 반박
홍보수석, 현안 관련 첫 공식 브리핑…통일부, 송환 영상 공개 검토

왼쪽 사진은 국가안보실 관계자가 2019년 11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 주민송환 관련 메시지를 보고 있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당일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 하는 모습. (뉴스1 DB·통일부 제공) 2022.7.1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유새슬 기자 = 지난 2019년 탈북 어민이 강제 북송(北送)된 사건을 놓고 신·구 권력 사이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사건 당시 국가안보실장이었던 정의용 전 실장이 침묵을 깨자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곧바로 정면 반박에 나서는 등 양측간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검찰과 감사원, 국정원, 국회, 각 정부 부처까지 전방위적인 진상 규명작업이 진행되면서 정국은 당분간 '진실게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귀순 의사'에 진정성 있었나

대통령실이 전임 정부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점은 크게 3가지다. 북송 어민들이 진정성있는 귀순 의사를 밝혔는지, 이들이 북송되기 전까지 이뤄진 조사는 충실하게 이뤄졌는지, 흉악범이자 북한 어민인 이들에게 어떤 법이 우선 적용돼야 하는지 등이다.

사건 당시 정부합동정보조사 결과 정부는 이들이 귀순의향서를 작성했지만 진정성이 없었다고 결론내렸다.

정 전 실장은 전날 배포한 입장문에서 "이들은 나포된 후 동해항까지 오는 과정에서 귀순 의사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며 "통상적 절차인 귀순 의사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귀순의향서를 제출했던 것"이라고 했다. 귀순 의사 표명 시점과 방식이 통상적인 귀순 과정과 크게 달라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정반대 주장을 내놨다. 대통령실은 즉각 반박 자료를 내고 "북방한계선(NLL)을 넘기 전 탈북 어민들은 '이젠 다른 길이 없다. 남조선으로 가자'며 자발적인 남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나포되기 전부터 귀순 의사는 명확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경고사격에 대한 공포감 등에 따라 이동과 정지를 반복한 것이며 추후 보호신청서 자필 서명 등을 통해 귀순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송 결정까지 충분한 합심 조사 이뤄졌나

정 전 실장은 입장문에서 "이들에 대한 전체 조사 내용은 국정원에 보존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조사 내용을 왜곡 조작했다고 주장한다면 이들의 진술과 조사 결과를 모두 공개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통령실은 이들의 북송을 이미 결정한 상태에서 이뤄진 만큼 합심 조사는 부실했고 지나치게 짧았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실은 "청와대는 신호정보에만 의존해 탈북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고 우리 측으로 넘어오기도 전에 흉악범 프레임을 씌워 해당 어민의 북송을 미리 결정했다"며 "보통 1~2달 걸리는 검증 과정을 2~3일 내에 끝내는 등 합심 과정을 졸속으로 처리하고 선원들이 타고 온 배를 돌려주는 등 탈북민 합심조사를 부실하게 강제로 조기 종료시켰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최근 국정원은 합심 조사를 조기에 강제 종료시키고 어민들을 북한에 조속히 넘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며 서훈 당시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정원법위반(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작성죄 등의 혐의다. 서울중앙지검은 사건이 배당된 공공수사3부에 추가 인력을 배치하는 안을 논의 중이다.

◇16명 살해한 북한 주민, 추방해야 하나 품어야 하나

정 전 실장은 어민들이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입장문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이들이 어떤 도구를 이용해 선장과 선원을 어떤 순서로 살해했고 어떻게 시신을 유기, 처리했는지 설명했다. 그러면서 "희대의 엽기적인 살인마들"이라며 국내법상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는 추방해야하고 국제법상으로도 난민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들의 살인 행각보다는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민'이라는 신분에 집중한다. 우리 국경을 넘어온 탈북민이라면 우리 사법기관이 우리 법에 따라 조사하고 처벌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전 정부는 귀순한 탈북자도 헌법상 우리 국민으로 간주하는 국내법과 고문방지협약에 따른 강제송환금지의 원칙 등 국제법을 무시하며 귀순자의 범죄행위만 부각시켰다"면서 "인권과 법치를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우리 국민을 살해한 외국인 선원들을 우리 동포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한 바 있다"고 밝혔다.

최영범 홍보수석이 17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7.17/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통일부는 전날 북한 어민들을 판문점에서 송환하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통일부와 외교부는 문재인 정부 당시 각 부처가 내렸던 조치들이 잘못됐다며 과거의 입장을 번복했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서 해양경찰청과 국방부가 피해자의 '월북 의도' 결론을 뒤집은 것과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의용 전 실장은 "당시 공직자로서 법과 절차에 따라 국민 보호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새로운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현 정부가 기존의 판단을 어떤 이유로 또 어떤 과정을 통해 번복했는지도 특검과 국정조사에서 함께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최영범 홍보수석도 브리핑을 열고 국조와 특검에 대해 "여야가 합의하면 피할 수도 없고 피할 이유도 없다"며 역시 정면 돌파 의지를 천명했다. 최 수석은 "다만 야당이 다수 의석을 믿고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국민의 눈과 귀를 잠시 가릴 수는 있을지 몰라도 진실을 영원히 덮어둘 수는 없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최 수석의 브리핑은 현안과 관련한 첫 공식 브리핑이었다. 최 수석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차례는 직접 설명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브리핑룸으로) 내려온 것"이라며 "마친 제일 큰 현안이라 이 얘기를 하게 됐다. 하필 이게 왜 첫 브리핑 주제냐, 이렇게 과잉 해석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에서는 특정 현안에 대해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내야 할 때는 대변인 대신 홍보수석이 언론 앞에 나서는 안이 꾸준히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용 전 실장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자 대통령실이 작심하고 전면전의 불씨를 댕겼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대통령실은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2022.5.10/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yoos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