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품격…정당과 선택 [이근면의 품격 몽상]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사람들연구소 이사장)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가난한 나라는 아니지만, 성취에 걸맞은 존중과 신뢰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아 있다. '품격 몽상'은 기업·대학·정부 현장에서 체감한 이 간극에서 출발한다. 이 시선과 시각에서 말하는 품격은 결과가 아니라 권한을 쓰는 방식, 규칙을 대하는 태도, 갈등을 조정하는 국가의 언어다. G3 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은 경제 규모가 아니라 세계가 신뢰할 수 있는 운영의 품격을 갖추는 일이다. '품격 몽상'은 성장 이후 대한민국이 반드시 넘어야 할 국격의 문턱을 사유하는 기록이다.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사람들연구소 이사장)

또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눈과 귀를 현혹하는 말의 성찬이 넘쳐난다. 우리는 선택한다. 정치인이라는 우리의 대변자를. 그런데 무엇을 기대해야 하나.

국가의 품격은 결국 정치에서 드러난다. 법을 만들고 예산을 결정하며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곳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의 품격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정치인만을 비판하는 데서 멈춘다. 물론 정치인의 책임은 크다. 하지만 정치의 수준은 정치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치는 유권자와 정치 구조가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다.

대한민국 정치가 갈등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정책 경쟁보다 진영 경쟁이 정치의 기본 구조가 됐고, 협상과 조정보다는 대결과 동원이 정치의 방식이 됐다. 타협은 배신으로, 설득은 패배로 해석되는 정치 문화 속에서 합의 정치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런 정치 구조에서는 품격 있는 정치가 자리 잡기 어렵다. 정치인이 장기 국가 전략이나 정책의 실효성을 이야기하기보다 당장의 지지층을 결집하는 메시지를 선택하게 된다. 정치의 언어가 거칠어지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이 정치적 효과를 더 크게 가져오는 구조가 형성된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 9월 2일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 겸 제418회 국회(정기회) 개회식에서 의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DB) ⓒ 뉴스1 신웅수 기자
정치인의 품격은 국가 운영의 기준이다

정치인의 품격은 단순한 개인의 인격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운영의 기준과 직결된다.

첫째, 국가를 개인의 정치보다 앞에 두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 정책을 흔드는 정치가 반복되면 국가의 신뢰도 함께 흔들린다.

둘째, 말의 책임을 아는 정치다. 정치인의 언어는 사회 전체의 언어가 된다. 정치에서 혐오와 조롱이 일상화되면 사회 전체의 대화 수준도 함께 낮아진다.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표현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책임 있는 언어를 요구한다.

셋째, 타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결국 협상의 제도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타협이 필수적이다. 타협을 패배로 인식하는 정치 문화는 결국 국가의 정책 결정을 마비시킨다.

넷째, 장기 국가 전략을 이해하는 정치다. 인구, 연금, 에너지, 산업 전략과 같은 문제는 선거 주기를 넘어서는 국가 과제다. 정치인이 국가의 장기적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그래서 정치인의 품격이 중요한 이유는 정치가 국가 시스템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눈살 찌푸리는 천박한 개인의 일탈과 패거리 우선이라는 눈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정치 풍토의 복원이 필요하다.

진해군항제 기간인 지난달 27일 경남 창원 진해구 여좌천 로망스다리 인근에서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과 어린이로 구성된 '슈팅스타' 치어리딩 팀이 6·3 지방선거 투표 참여 및 정책선거 홍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뉴스1 윤일지 기자
정치의 수준은 유권자의 선택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정치의 품격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의 축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유권자의 선택 기준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결국 유권자가 만든다. 유권자가 정책과 역량보다 감정과 진영을 중심으로 선택할 때 정치 역시 그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치인은 결국 표가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의 품격은 정치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유권자의 기대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현실 하나는, 국민이 정치인을 선택한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는 결국 출마한 사람 가운데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정치의 책임은 다시 정당으로 돌아간다.

한국 정치에서 정당은 점점 진영화됐고, 그 결과 후보 구성의 다양성은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났다. 공천 과정은 당내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새로운 인물이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가 정치에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국민이 선거에서 선택할 수 있는 후보의 폭은 실제로 매우 제한적으로 된다. 유권자는 더 나은 후보를 원하지만, 현실에서는 '차선 중에서 고르는 선거'가 반복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구조가 지속되면 정치에 대한 냉소가 커지고, 결국 정치 참여 자체가 약화한다.

정당의 자기 혁신이 필요한 이유

그래서 정치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당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정당은 단순한 선거 기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인재 양성 기관이어야 한다. 다양한 사회 경험을 가진 인물이 정치에 진입할 수 있도록 통로를 넓히고, 공천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정당이 진영 동원 조직에 머무르면 정치의 다양성은 줄어들고, 정치의 품격도 함께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정당 내부의 성찰과 혁신 없이 정치의 품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지난달 31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한 모의개표 실습이 진행되고 있다. ⓒ 뉴스1 이광호 기자
정치의 품격은 세 가지가 함께 만든다

결국 정치의 품격은 세 가지 요소가 함께 만들어낸다. 정치인의 책임, 유권자의 선택 기준, 그리고 정당 구조의 개방성과 다양성이다. 이 세 축이 동시에 작동할 때 정치의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경제적으로 세계의 중심부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국가의 품격은 경제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치가 얼마나 책임 있게 작동하는지, 정당이 얼마나 열린 구조를 가졌는지, 그리고 국민이 어떤 기준으로 정치인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국가의 수준이 결정된다.

더하여 정치인의 자격과 공직자의 기준, 그리고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품격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어떤 정치 구조를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어떤 정치인을 선택하고 있는가. 약속인가, 말재주인가? 오늘인가, 내일인가? 정치의 품격은 결국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 필자는 삼성광통신 CEO 출신으로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지냈다. 성균관대·아주대·경성대 교수와 청년미래네트워크·청년위함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사람들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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