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청와대 조직은?…공식 참모 역할은 박정희 시절부터
이로써 새 정부 청와대는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산하에 정무·민정·홍보·국정기획·경제·미래전략·교육문화·고용복지·외교안보 수석 등을 두는 2실 9수석 체제로 출범하게 됐다.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줄이고 청와대 비서실을 중심으로 청와대 조직 체계를 일원화 해 국정 과제 추진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역대 정부 역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영할 수 있는 청와대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 애썼다.
정부 수립 후 초대 이승만 대통령 시절 비서실은 1급 비서관장 1명과 8명의 비서관으로 구성됐다.
당시 비서실 명칭은 비서관실이었다. 비서관장 산하에는 정부, 공보, 서무, 문서, 경무대 등의 조직을 운영했다.
내각책임제로 운영된 제2공화국 윤보선 대통령은 경무대를 청와대로 바꾸고 비서실장과 대변인을 처음 도입했다.
비서실에는 대변인과 국방, 공보 두 개의 부서만이 있었고 비서실 정원은 14명이었다.
비서실이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수행하며 국정 전반을 조율하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취임 이후다.
1968년 이후 비서실은 총무, 공보, 정보, 민원, 의전, 정치, 경제, 행정, 외교, 농림 등의 수석체제로 개편됐다. 특히 경제부문은 경제 1·2·3 수석으로 나눈 것이 특징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10개의 수석비서관실을 뒀다.
정무1 수석실은 외교와 군사 업무를 담당했고 정무2 수석실은 일반행정 업무를 맡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3개였던 경제 수석실은 1개로 통합됐다.
또 교육문화 수석을 신설해 교육, 문화, 새마을, 국민정신 교육을 담당했다.
민정 수석과는 별도로 사정 수석과 법무 수석을 뒀으며 공보 수석, 의전 수석, 총무 수석 등은 이전 정부와 같이 유지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정무분야를 1개로 줄여 1명의 정무 수석을 뒀고 외교·통일·국방 업무를 총괄할 수 있는 외교안보 수석을 신설했다.
행정 수석 역시 신설됐지만 경제 수석, 민정 수석, 공보 수석, 의전 수석, 총무 수석은 그대로 이어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사회복지 수석과 농수산 수석을 추가했다.
IMF 경제위기 탈출이 최대 과제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비서실 조직을 30% 가량 축소했다.
국민의 정부는 문민정부 말기 1실장 1정치특보 11개수석 체제였던 비서실을 1실장 6수석 체제로 축소했다.
그러나 임기 중반 실업과 교원정년 단축 등의 현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 수석을 교육문화수석과 복지노동수석으로 분리했다.
또 대기업 총수 부인이 현직 검찰총장 부인에게 사건 무마 청탁을 한 '옷 로비 사건' 이후에는 민정 수석을 부활시켜 1실장 2특보 9수석으로 확대됐다.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운 노무현 대통령은 '386 참모'들을 중심으로 2실장 7수석 4보좌관 49비서관 체제를 구축했다.
비서실 산하에 시민사회 수석, 민정 수석, 홍보 수석, 인사 수석 등을 뒀으며 정책실장 소속으로 경제정책 수석, 사회정책 수석, 혁신관리 수석 등을 설치했다.
특히 장관급인 국가안보보좌관 소속으로 차관급인 외교보좌관, 국방보좌관을 둔 것이 측징이다.
국가안보보좌관은 이후 안보실장으로 격상돼 산하에 안보정책 수석을 뒀다.
이밖에 차관급인 경제보좌관과 인사보좌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별도로 운영했다.
실무형 정부를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은 정책실과 안보실을 없애고 기존의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을 대통령실로 통합해 대통령실로 개편하는 등 1실장 8수석 1기획관 체제로 출발했다.
이후 정책실장을 신설하고 산하에 미래전략기획관, 녹생성장기획관, 국제경제보좌관을 두는 등 2실장 9수석 6기획관 체제로 확대됐다.
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를 겪으면서 정부와 홍보 업무가 대폭 강화됐다.
ys2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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