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명안 부결' 통합진보당에 후폭풍 강타…하루 새 1000여명 탈당

부결 이끈 김제남 의원 '뭇매'…분당 목소리 높아져

통합진보당 박원석 전 원내대변인, 심상정 전 원내대표, 강기갑 대표, 김제남 의원, 강동원 의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각각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안 부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2.7.27/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통합진보당은 27일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안 부결 사태로 인한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강기갑 당 대표와 심상정 전 원내대표 등 혁신파 측은 예상하지 못한 부결 사태에 대한 충격을 감추지 못하며 구당권파 측을 비판했다.

혁신파 측은 특히 전날 표결에서 '무효표'를 던진 중립파 김제남 의원이 당초 제명에 찬성했다는 합의 내용을 공개하며 일제히 김 의원을 비난, 당내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질 분위기다.

이번 부결 사태에 절망한 당원들의 탈당 움직임도 가속화되는 한편 일부 혁신파 의원들까지 탈당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비례대표 후보경선 부정 파문으로 촉발된 내분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혁신파 충격… "진보정치 갈 길 잃어"

강기갑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사과문을 발표, "진보정치가 갈 길을 잃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강 대표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이라며 "통합진보당은 혁신과 통합의 어떤 수단도 찾기가 난망한 상황에 이르렀다"고도 했다.

강 대표는 또 "대표가 된 저 앞에 커다란 벽이 있음을 절감한다"며 구당권파 측을 겨냥했다.

그는 "이틀 전 중앙위원회에서 새로운 집행부조차 구성되지 못했다. 대표의 인사권한은 사전에 봉쇄당했고 지금까지의 혁신을 모두 후퇴시키는 현장발의가 쏟아졌다"며 "여기에 어제 의총은 당심과 민심을 완전히 거스르는 결정을 내려 혁신을 좌초시키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부결 직후 원내대표직을 사임한 심상정 의원은 "어제 의총에서 당원들의 뜻과 국민들의 바람을 거스르는 결정이 이루어진 데 대해 원내대표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거듭 죄송하다"며 "힘으로 국민을 이기려고 하는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어제 결정은 국민들이 과연 통합진보당이 혁신의 길을 계속 갈 수 있을 것인가, 제3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회의하게 만들었다"며 "이 점에 대해 저 역시 깊이 숙고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고민을 내비쳤다.

◇무효표로 부결 이끈 김제남 의원에 집중포화… "숨겨진 구당권파"

무효표를 던져 결과적으로 제명안을 부결시킨 김제남 의원에 대해서는 혁신파 측의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참여당 출신의 강동원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김제남 의원이 의원들 간의 정치적 합의사항을 아무런 사전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국민적 관심사인 제명 건을 부결시킨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도, 당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라며 "의원들이 사전에 충분히 논의했던 합의가 깨짐으로써 서로간의 신뢰가 망가진 데 대해 용서할 수 없는, 비통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비판했다.

강 의원은 그러면서 지난 23일 의원총회에서 혁신파 의원 5명과 중립파인 정진후 김제남 의원 등 7명이 서명한 의총 결정문을 공개했다.

김제남 의원은 당시 구당권파 측 요구사항이었던 25일 중앙위원회 이후 의총을 열 경우 두 의원을 동시에 제명 의결하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심상정 원내대표 등은 26일로 재차 의총을 연기한 뒤 표결에 나섰다.

강 의원은 "김제남 의원은 어제 의총 과정에서 마치 제명에 찬성하는 (혁신파) 의원들을 안심이라도 시키듯 '국민적인 요구와 당원에 대한 요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명안을 미룰 수 없다'고 했다"며 "이에 따라 혁신파 의원들은 결코 제명안이 부결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혁신파 박원석 의원도 기자회견을 갖고 "김제남 의원의 이석기·김재연 구하기는 강 대표를 선택한 당원들의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자, 야권연대의 파국을 바라는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에 선물을 안겨주는 정치적 범죄행위"라며 "김 의원은 그동안 숨겨진 구당권파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박 의원은 "김제남 의원 개인으로는 많은 생각과 고통이 있었겠지만 정치인 김제남, 진보정당 국회의원 김제남은 당과 국민을 바라보고 개인적 고통을 극복하는 결정을 해야 할 책무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제남 의원은 무효표를 던진 데 대해 "혁신파 강 대표 체제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통합진보당 절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혁신파만으로는 혁신이 어렵다"며 "당원이 선택한 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혁신파는 물론 구당권파 모두가 참여할 때 혁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무효표를 행사하기로 마음먹은 데 대해선 "(25일) 중앙위의 갈등과 대립을 지켜보면서 두 그룹 간 화합이 없이는 중단 없는 혁신이라는 문을 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됐다"며 "두 의원을 제명처리한다면 두 세력의 화합과 단합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혁신파 측은 '궤변'이라고 거듭 몰아세웠다.

박원석 의원은 "김제남 의원은 두 의원의 제명을 부결시킨 이유로 '중단 없는 혁신'을 위해서라는 얼토당토 않는 궤변을 들어 국민과 당원을 기망했다. 강 대표의 혁신을 좌초시킨 주범이 중단 없는 혁신을 말하는 자기모순을 고백하고 있다"고 했고, 이지안 부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혁신을 중단시켜놓고 중단 없는 혁신을 말하다니 한국정치사 최고의 궤변"이라고 했다.

◇당원 동요·반발 확산…하루 새 1000여명 탈당계, 정당해산도 거론

제명안 부결 사태를 놓고 당내 동요가 확산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는 전날 부결 파문 직후부터 탈당신청서를 제출했다는 당원의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 당원은 "탈당서를 팩스로 보냈다. 빨리 처리해달라"며 "말같지도 않은 말을 대단한 말인양 포장하는 일부 의원의 말장난에 내가 (당에) 속해 있다는 게 수치스럽다. 이제 정을 끊는다"고 밝혔다.

이정미 대변인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어제 부결 이후 하루 동안 팩스 등을 통해 탈당서가 1000여건 접수됐다"고 말했다.

탈당과 함께 분당을 주장하는 당원들도 나오고 있다.

한 당원은 "탈당서를 메일로 보냈다. 차라리 분당이 되면 (구)당권파끼리 우물안 개구리처럼 그들만의 리그를 하든지…. 혁신파가 분당 후 창당되면 그때 다시 가입하겠다"고 했다.

일부 당원들은 '김제남 의원 규탄 및 의원직 사퇴와 당의 환골탈태 촉구 당원 성명서'를 게시판에 올려 당원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혁신파 강동원 의원은 "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참여당계 당원들이 상당수 동요하고 탈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당장은 그렇게 하면 안되기에 참여계 쪽에서는 탈당을 자제, 진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그러면서도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구당권파와 같이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솔직히 회의를 느끼고 있다"며 "당 대표도 아니니 분당을 운운할 처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탈당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원 일각에서는 탈당에 앞서 당원투표를 통해 정당해산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분당으로 갈까… 구당권파 "혁신파 분당, 쉽지 않을 것“

혁신파를 중심으로 한 분당 가능성을 거론하는 관측도 잦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구당권파 측의 입지가 강화되고 혁신파와의 대립 또한 격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혁신파 측이 두 의원에 대한 제명 이후 혁신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 이번 사태로 인해 틀어진다면 더 이상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파 측의 분당 가능성에 대해 이번에 승기를 잡은 구당권파 측은 "분당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구당권파 측 이상규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에 출연해 "(2008년) 민주노동당 시절 분당의 아픔이 있기 때문에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이 분당의 길로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유시민 전 공동대표로 표현되는 국민참여당 출신 당원들 또한 그간 우여곡절을 많이 겪어 오신 분들이어서 분당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당을 하게 되면 국민 누구도 지지를 보내기가 힘들 것"이라며 "특히 대선을 앞둔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구당권파 측 오병윤 의원도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혁신파의 분당 가능성에 대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진보정치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일시에 고통스럽게 해결하는 과정으로 판단하고 함께 가야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혁신파 측은 분당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꼈다.

강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분당 가능성을 묻는 질문을 받고 "지금 시점에선 답을 할 수 없다. 당원과 국민들에게 길을 묻고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심 의원도 탈당이나 분당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런 질문은 지금 적절하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심 의원은 자신이 기자회견에서 '깊이 숙고하겠다'고 했던 언급에 대해선 "어떤 방법으로 당이 혁신할 수 있으며, 우리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겠다는 것"이라며 분당·탈당 가능성 등의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구당권파 측은 지도부의 향후 거취와 관련, 현 지도부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등 유화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이상규 의원은 "강 대표를 중심으로 모든 당원들이 단합하고 단결해서 대선 정국에서 진보의 역할을 해야 될 때"라며 "대승적 관점에서 당 지도부가 당을 이끌어주길 바란다. 저희는 적극적으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사의를 표명한 심 의원 등 원내대표단에 대한 재신임 가능성에 대해서도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의원단에서 충분히 논의해서 지혜로운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병윤 의원도 "당 지도부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안 하나 하나에 따라서 지도부가 모든 책임을 다 져야 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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