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김현지는 생각하지 마

조소영 정치부 차장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우리나라에는 2006년 출간된 미국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책 제목이다.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오히려 코끼리를 더 선명히 떠올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인간의 무의식과 심리에 대해 다룬 영화 인셉션에도 관련 장면이 담겨 있다. 주인공인 도미닉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동료 아서(조셉 고든레빗)와 이들을 고용한 고용주 사이토(와타나베 켄) 간 대화에서다. 아서는 사이토에게 "내가 당신의 머리에 생각을 심어보겠다"면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Don't think about elephants)라고 한다. 이후 아서가 사이토에게 "무엇이 생각나나"라고 묻자 사이토는 "코끼리"(Elephants)라고 답한다. '어떤 것'을 부정하려면 먼저 '그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정치권에서 이 논리를 즐겨쓰는 그중 하나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8월 25일 정 대표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과 상법 추가 개정을 국민의힘이 비판하면서 '경제 내란법'이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 이 논리를 들어 비판했다. 지난 10일에도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이재명 대통령 부부의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를 연결 지으며 '잃어버린 48시간'을 거론하자 "박근혜의 잃어버린 7시간, 윤석열의 잃어버린 3년만 생각날 뿐"이라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그러면 코끼리를 생각하게 돼 있다"고 했다.

정 대표의 관점으로 살펴본다면 최근 '민주당의 코끼리'는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이다. 김 실장은 지난달 초, 대통령실 예산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심사소위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됐다. 같은 달 24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민주당이 김 실장이 제외된 대통령실 기관증인 출석요구의 건을 처리하려 했다. 국민의힘은 "14대 국회(1992년) 이후 단 한 번도 국감에서 빠지지 않은 총무비서관을 증인 명단에서 배제하는 안"이라고 반발했다.

흥미로운 것은 대통령실이 닷새 뒤인 9월 29일 총무비서관에서 1부속실장으로 김 실장의 보직 변경을 발표한 것이다. 1부속실장은 대통령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자리인 만큼 그간 국회에 출석한 전례가 없다. 당초 출석 대상이었던 인물을 불출석 대상자로 만들어 버렸으니, 이것이야말로 '김현지는 생각하지 마'가 돼 버렸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이미 '김 실장을 불출석시키자'는 신호를 주고받은 상태다. 민주당은 호방하게 15일 운영위 전체회의를 열어 김 실장 등에 관한 증인 채택 논의를 하겠다고 하더니, 지난 13일 이 일정을 미뤘다. 운영위의 대통령실 국감은 내달 6일이다. 국민의힘은 간만에 잡은 물고기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15일을 지나 새달 6일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사람들의 인식 속 김현지라는 코끼리는, 이로써 계속해서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 대표 말처럼,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도록 했더니, 코끼리는 더 크고 선명해졌다.

cho1175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