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베네수엘라와 냉부해' 국민의힘 메시지 전략의 빈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지지자들이 1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에서 마두로 대통령 발언을 들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08.01. ⓒ AFP=뉴스1 ⓒ News1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베네수엘라도 대법원이 무너지면서 독재가…" "자칫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로…" "베네수엘라가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도…"

전 세계 250여개국 중에서 요즘 국민의힘의 '최애'를 꼽자면 단연 지구 반대편의 베네수엘라가 아닐까. 민생소비쿠폰부터 상법 개정안, 대법관 증원,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 등 각종 대여 공세 메시지에서 한 번씩은 소환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국민의힘 입장에서 베네수엘라만 한 '사례집'은 드물다. 정부의 확장 재정을 비판하려니 오일머니로 지출을 늘리다 인플레이션으로 고꾸라진 사례가 있고,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을 꼬집으려니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종신 집권을 시도한 우도 차베스 대통령 사례가 떡하니 있으니 말이다. 베네수엘라 현대사는 야당이 비판 소재로 삼을 딱 맞는 요소들이 녹아든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국민의힘의 대여(對與) 공세 빌드업에 빠지지 않는 소재가 되어버렸다. 국민의힘이 홍보비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과하면 내성이 생기는 법이다. 반복된 비유는 메시지의 설득력을 약화시킨다. 핵심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베네수엘라의 황금기를 모르는 청년 세대에서는 국민의힘의 빌드업을 두고 "또네수엘라" "베네수엘라 타령" 등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정치권의 습성을 고려하면 이해하지 못할 전략은 아니다. 여야 모두 끈질기게 의혹을 제기한 덕에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힌 경험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야당은 달라야 한다. 말초적인 사안으로도 중추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 야당의 특권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생활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관세 협상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 나라 살림은 빠듯해지고, 유괴와 납치 같은 개도국형 범죄까지 들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매번 같은 빌드업은 전략의 빈곤으로 비칠 수 있다.

추석 연휴 이른바 '냉부해' 논란에 당이 메시지 역량을 집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나라의 시스템이 셧다운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대통령실의 대응이 석연치 않았던 점도 분명하나,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일회성 이슈에 황금 연휴를 소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더군다나 당초 국민의힘은 이번 명절 밥상에 '물가' 문제를 올릴 생각 아니었나. APEC을 앞두고 'K-푸드' 홍보라는 취지만 더 키웠다는 목소리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대선 패배 이후 보수 유권자들은 연일 국민의힘에 치열한 투쟁을 주문하고 있다. 넓은 시야와 더 치밀한 고민이 담긴 메시지. 유권자들은 야당에게 더 절실하며 진정성 있는 비판을 원한다.

hy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