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오늘 야당이 시청 앞 대신 있어야 할 곳
-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찬탄(탄핵찬성)파 지도부를 향한 "배신자!" 고함과 함께 윤석열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깃발이 대구 하늘에 펄럭였다. 수도권 의원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고, "애국시민이여 함께 싸우자"는 구호까지 난무, 올 초 탄핵 정국의 복사판이었다.
국민의힘은 28일 서울 시청 앞에서 두 번째 장외투쟁에 나선다. 일주일 전 대구에 이어 장소만 바뀐 규탄대회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비상한 시기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싸워야 한다. 더 넓게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장외로 나가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27일 국회 기자회견)
지도부는 '독하게 싸우는 야당'을 내세웠다. 그러나 민심을 잃은 소수 야당에 남은 카드는 필리버스터·아스팔트 집회·국회 보이콧뿐이다.
국회에서는 나흘째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텅 빈 본회의장에서 몇몇 의원이 되풀이하는 연설은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의원총회에서도 이견이 분출했다. "필리버스터도 장외투쟁도 힘이 약한데 둘 다 하겠다는 게 전략인가. 차라리 하나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이대로면 지도부가 연말까지 버티기 어렵다"는 위기감, "차라리 외부에서 강제 해산시켜줬으면 좋겠다"는 자조도 당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중진들도 "야당탄압·입법독재 같은 구호로는 중도층을 얻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재명 끝내자" "중국 공산당식 독재" "서울 수복" 같은 색깔론 짙은 구호가 집회 현장을 가득 메운다.
이런 상황에서 장외투쟁이 '그들만의 잔치'로 그치지 않으려면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비상계엄 이후 9개월 넘게 미뤄 온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완전한 절연, 대국민 사과가 그 출발점이다.
국민의 마음은 독한 투쟁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읽어내고, 끊임없이 설득하며 함께 연대하고 대안을 제시할 때 비로소 정치는 힘을 얻는다.
검찰청 폐지 문제는 법제사법위, 기획재정부 개편은 기획재정위, 원전 운영은 환경노동위에서 더 치열하게 붙었어야 했다. 표 대결에서 이길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정부조직법 대안을 내놓는 게 야당의 역할이다.
시민들이 듣고 싶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거대 담론이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 생활과 맞닿은 이야기다. '입법독재' '법치주의 붕괴' '헌법 수호' 같은 표현이 중도층에 와닿기 힘든 이유다. 대신 물가·주거·일자리 등 생활과 직결된 민생 의제를 앞세워야 한다.
강성 지지층이 모인 시청 앞에서 구호를 외칠 때가 아니다. 국회에서 국민을 설득하고 책임 있는 해법을 제시할 때 진정성이 드러난다.
국민의힘은 시청이 아니라 국회로 돌아가 싸워야 한다. 그게 민심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angela0204@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