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먼저, 민생 나중…·임대료 꼼수 방지법·응급실 핫라인법 '꽁꽁'

대지급금 변제 회수 강화·기후위기 대응법 줄줄이 표류
여야는 네탓 공방만…'무한 필버' 시엔 두 달 이상 묶일 수도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 429회 국회(정기회) 제9차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2025.9.26/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현 손승환 기자 = 정부조직법을 둘러싼 여야의 충돌로 민생 법안 70여 개가 국회 마지막 문턱 앞에서 멈춰 섰다. 국민의힘이 비쟁점·민생 법안까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쟁점 법안부터 본회의에 상정하는 맞대응에 나선 결과다.

깜깜이 관리비 인상 근절법부터 응급실 핫라인법까지 계류

2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기준 본회의 상정을 대기 중인 법안 가운데 정부조직법 등 쟁점 법안과 장기계류 법안을 제외한 비쟁점·민생 법안은 70개가량이다. 이들 법안은 앞서 소관 상임위와 법사위에서 여야 이견을 조정해 무난한 통과가 전망됐다.

이번에 좌초된 비쟁점·민생 법안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상가 주인이 보증금 증액률 상한(5%)을 피해 관리비를 인상하는 꼼수를 저지하려는 취지의 법안이다. 표준계약서에 관리비 부과 항목이 포함되도록 명시해 '깜깜이 관리비 인상'을 제도적으로 차단한다.

정부가 사업주에게 대신해 임금 등을 지불한 대지급금의 변제 회수를 강화하는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도 통과를 기약할 수 없게 됐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상위 수급인의 귀책 사유로 임금체불이 발생한 경우 상위 수급인 역시 연대 책임을 지게 돼 있으나, 임금채권보장법 미비로 이를 청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도 보완하는 내용이 골자다.

사진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의 빈 상가에 붙은 임대 문의. 2025.9.25/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또 응급환자 이송 담당자가 응급실에 '전용회선'을 설치해 환자 수용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 전국적 의료서비스 중단 등의 의료 공백이나 감염병 대유행 등을 '국가 보건의료 위기상황'으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조사 책임을 명시하는 보건의료기본법도 있다.

기후위기 대응 법안도 발이 묶였다.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개정안은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이행 현황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법안 역시 2050 탄소중립 비전을 반영해 손질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본회의장 인근에 설치된 국회 기후위기 시계는 멈추지 않고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 상승하는 시점까지 달려가고 있지만, 이들 법안은 정쟁 때문에 멈춰 있다.

여야, 책임 공방만 주고받아…'무한 필버' 시 최장 두 달 지연

여야는 책임 공방만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은 비쟁점·민생법안까지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국민의힘으로 화살을 돌렸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의장 주재로 송언석 원내대표와 회동한 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 합의 법안까지 필리버스터를 예고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일단 네 개 법안만 상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쟁점 법안 상정을 뒤로 미루고 비쟁점·민생 법안을 우선 처리하자는 제안을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우원식 의장 주재로 김병기 원내대표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저희는 여야 합의가 된 것을 먼저 올리자고 했으나 민주당은 (우리가)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것을 먼저 상정하자고 하면서 의견이 엇갈렸다"며 "국회의장은 민주당 쪽의 손을 들어줬다"고 말했다.

다만 여야는 전날 여론의 관심을 받았던 비쟁점·민생법안인 '문신사법'과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특별법'은 전날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우원식 국회의장(가운데)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 집무실에서 열린 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왼쪽),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9.25/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한편, 본회의에 상정돼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고 있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 국회법 개정안, 국회 증언·감정법 개정안은 이르면 오는 29일 오후 모두 본회의를 통과할 전망이다.

남은 비쟁점·민생 법안의 처리는 이달 말이나 다음 달로 넘어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만일 국민의힘이 이들 법안에 대해 모두 필리버스터를 신청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이 24시간 후 강제 종결로 맞선다고 해도 모두 통과하기까지는 법안 상정일로부터 두 달이 넘게 걸릴 전망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쟁점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지만 민생 법안에 대해서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해관계자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masterk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