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이인영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민주통합당의 첫 지도부로 선출된 이인영 최고위원은 19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을 지낸 당내 운동권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인사의 상징적 인물이다.
1964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등학교를 거쳐 84년 고려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주도,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구속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석방 후 재야운동을 하며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직국장, 한국청년연합회(KYC) 지도위원을 지내다 99년 뒤늦게 정치권에 합류했다.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되어 당무위원, 청년위원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서울 구로구갑 지역에서 2번의 낙선과 1번의 당선을 경험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에서 낙선한 그는 17대 총선에선 당선됐다. 18대 총선에서 또 다시 낙선했다.
낙선 후 18대 국회에선 최근까지 야권대통합인 '민주진보대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민주당의 야권통합특위위원장을 맡아 민주통합당 출범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번 전대에선 '젊은정당' , '젊은대표' 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세대교체론'으로 승부수를 띄우며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그는 "20˙30대 당원을 찾아보기 어려운 정당, 20·30대를 위로하지 못한 정당이라는 게 지난 날 민주당의 아픔이었다"며 당의 세대교체를 호소했다.
당내 486 인사 주축의 소장파 인사들의 모임인 진보행동은 이 최고위원 지지를 공개 표명했었다.
이 최고위원은 '리틀 김근태'로도 불린다. 지난해 12월 30일 타계한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 상임고문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부산합동연설회를 포기하고 급히 상경하기도 했다. 상중에는 김 고문의 맏상주 역할을 도맡아 했다.
야권대통합을 주도했던 그는 9명의 주자들 중 중위권에서 치열한 다툼을 벌이다 마침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이끌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일원으로 선출돼 당내 입지를 굳혔다.
△1964년 충북 충주 △충주고 △고려대 국문학과 △고려대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직국장 △새천년민주당 청년위원장 △17대 국회의원(서울 구로갑) △열린우리당 열린정책연구원 부원장△민주당 최고위원 및 야권통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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