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韓핵무장 요구, 위험하고 어리석어…北과 현실·실용적 협상해야"(종합)

올해 들어 첫 공개 강연…"한미, 北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서 출발해야"
"상호 위협 감소와 북미관계 개선 나란히 올려놓고 해결해야"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현실적·실용적 접근'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3.2.22/뉴스1 ⓒ News1 여태경 기자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21일(현지시간) 한국 내에서 독자 핵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과 관련,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판하면서 한국과 미국에 현실적·실용적 접근을 통한 북한과의 외교협상을 주문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워싱턴DC에 위치한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현실적·실용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가진 강연에서 "한국 내부에서 핵무장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한국이 비핵화의 목표를 포기하고 핵무장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그것은 한미 관계를 악화시키고 동아시아의 핵무기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가능한 유일한 선택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통한 북한과의 외교협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내 핵무장 여론이 커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북미간 북한 비핵화 협상 실패에 따른 좌절감과 박탈감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에 따른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에 대한 의구심 등을 꼽은 뒤 "그런 현상에 대해 미국은 확장억제 약속을 한국민들이 더 확실히 신뢰할 수 있도록 행동 또는 조치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와 올해 자체 핵무장론이 고조된 가장 큰 이유로 "한국의 정권 교체"를 지목,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구하느냐,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여론이나 언론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서 "자체 핵무장론이 아예 없었던 게 아니라 (그간) 덮여 있던 것이 표출된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총리는 그러면서 한국내 정치인들을 향해 "결론을 미리 내놓고 그걸 갖고 논쟁을 벌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타진해 가면서 물밑에서 미국과 함께 안보 로드맵을 준비해 가는 게 지금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전 총리가 공개 강연에 나선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지난해 6월부터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 전 총리는 이번 강연을 끝으로 사실상 연구소에서의 연구 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 전 총리는 "1993년 제1차 북한 핵 위기가 시작된 이래 미국과 한국은 북한과 간헐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벌여왔지만,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의 여러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 핵 협상 실패의 이유로 △북한 생존욕구의 무시 △북한 붕괴론의 오판 △압박 효과의 과신 △정책 일관성의 결여 △완벽주의적 접근의 함정 등을 꼽았다.

그는 특히 지난 2019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해체는 북한이 요구한 5대 경제제재 해제의 대가로 부족하다며 회담을 결렬시켰던 것을 거론, "영변 핵시설이 북한 핵능력의 90%까지를 차지하는 '심장'"이라며 "미국이 그 경제 제재를 해제하면서 영변 핵시설을 먼저 폐기하고 그다음 단계로 진척시켰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현실적·실용적 접근'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3.2.22/뉴스1 ⓒ News1 여태경 기자

이 전 총리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의 북한 정책은 북한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면서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완벽주의적 접근으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 또는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협상으로 전제조건으로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북한을 무시하거나, 경제 제재로 압박을 강화하며 북한 붕괴를 기다리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키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자극하는 등 역효과를 내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협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북한 비핵화 문제를 '상호 위협 감소' 및 북미 관계 개선과 나란히 올려놓고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그는 "협상에는 '채찍'과 함께 '당근'도 필요하다"며 "워싱턴과 서울은 평양과의 협상을 위한 장기 로드맵을 준비하고, 국내 정치의 단기적 변화에 방해받지 않는 지속적이며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 전 총리는 2005년 6자 회담에서 참가국들이 '약속 대 약속,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해 단계적으로 합의를 이행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설명하면서 "뿌리 깊은 상호불신을 극복하고 협상을 성공시키려면 북한과 미국이 점진적, 동시적, 상호적 방식으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향해 가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에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있는 것을 지적, "그런 생각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능력 강화와 중국 의존 심화를 초래했다"면서 "그것은 미국이 바라는 세계질서에도,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각에서 북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이 이뤄질 경우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 동맹 약화를 우려하는 주장이 제기되는 데 대해 "그런 인식이야말로 편협한 사고방식"이라며 "냉전의 종결이 독일 또는 일본 주둔 미군의 존재나 미국과 그 두 나라의 동맹을 위태롭게 하진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통일 이후에도 역내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북한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키우고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만약 한국이 소련, 중국과 수교한 1990년대 초에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수교했더라면 지금의 북한 핵문제는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책으로 세계 질서를 바꿔왔다면서 "나는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북한과 수교를 하면 미중 경쟁에서도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미중 경쟁의 새로운 국면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현실적·실용적 접근'을 주제로 강연을 한 뒤 질의응답을 받고 있다.

이 전 총리는 북한을 향해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믿을 수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북한은 더 이상 고립과 대결의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남북 화해협력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포기해선 안 된다. 북한은 미국과 다시 만나 조건없는 협상을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가 더는 대립이나 전쟁 위기와 핵위협에 시달려선 안된다. 모든 관련국들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길에 동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향해 "즉각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 행동 없는 약속만으로는 충분한 신뢰를 얻기 어려운 국면이 되고 있다"면서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행동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북한 문제와 관련해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그 현상이 지금 다시 나타나려고 하고 있다. 저는 그것을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 행정부는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에 기존의 북한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지금도 재검토만 하고 있는 것인지, 2년 동안 뭘 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국제적인 지도력을 유지하고 싶겠지만, 동맹의 사활적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관심이 저하되면서 국제적 리더십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중국의 역할과 관련해선 "중국이 한반도 평화나 북한의 핵무장을 미국과 경쟁에서의 유불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길 바란다"면서 "중국이 지도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면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지도국가로서 당연한 의무 중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또 상식적으로 볼 때 인접하고 있는 나라의 핵무장이 반가울 리 없다"면서 "중국은 지도국가로서가 아니라 북한의 이웃국가로서 북한의 핵무장을 제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을 향해 "한반도를 미중 경쟁의 최전선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한반도는 7000만명 이상의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곳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큰 나라들의 도리지,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한 최전선으로 만들어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큰 나라들이 할 게 아니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북중러의 3각 연대에 맞서 한미일 3각 공조를 강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일본을 향해 "진정한 이웃나라답게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진심으로 도와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 전 총리는 문재인정부에서 종전선언을 이뤄내지 못한 데 대해선 "(종전선언이) 주한미군이나 한미동맹의 약화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미국내 꽤 많이 있는 것을 느꼈다"며 "그것을 설득해 내는데 한국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 전 총리는 이날 강연을 시작으로 4월까지 필라델피아, 뉴욕, 휴스턴, 로스앤젤레스, 덴버에서 대학과 한인 단체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이어갈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gayunlov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