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 '알박기 인사' 폐해…"대통령 인사권 제도화해야"

與 "일도 안 하면서 혈세 축내" 사퇴 압박에도…'버티기' 속수무책
전문가 "대통령·기관장 임기 일치시켜야"…'한국판 플럼북' 제안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7.4/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박종홍 기자 = 윤석열 정부가 전임 정권의 '알박기 인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째에 접어들었지만, 문재인 정권 말에 임명된 정부기관 및 국책연구기관 기관장들을 당장 물갈이할 묘책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알박기 인사'는 역대 정권마다 반복적으로 논란이 됐다. 새 정부는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 인사를 교체하려 애쓰지만, 정권 말이 되면 여지없이 알박기 인사를 단행했다. 구습(舊習)의 고리를 끊으려면 기관장 임기를 조정하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與 '좌표 찍기' 불사 공세에도…'버티기' 나서면 속수무책

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연일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지난 3월 자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6개월 앞두고 임명한 공공기관장은 총 59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허은아 당 수석대변인은 전날(4일) 논평을 통해 "당 자체 조사 결과 대통령 임기 종료를 6개월 앞둔 시점에서 52개 기관의 기관장 13명과 이사·감사 46명 등 59명이 측근 챙기기용 '알박기 인사'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허 수석대변인은 "이들 중 2024년까지 임기인 인사가 28명, 2025년까지인 인사는 14명으로 무려 71%가 윤석열 정권 임기 절반까지 자리를 보전하게 되는 셈"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 인사들이 '임기'를 이유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좌표 찍기', '망신 주기'도 불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이석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등이 대표적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달 30일 홍장표 KDI 원장, 전현희 권익위원장, 정해구 이사장, 이석현 수석부의장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국민 혈세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이념을 공유하지 않는 고위 인사들로 인해 국정이 혼란에 빠지고 있다"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이 '버티기'에 나서면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산하 기관장들에게 사퇴 압력을 가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된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현재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공기관장의 퇴진을 강제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22개에 달하는 대통령직속위원회를 4~5개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상당수의 현직 위원장들이 임기를 채우겠다며 버티자 난관에 부딪힌 것도 이런 현실의 단면이다. 여권 관계자는 "전(前) 정권에서 임명한 기관장들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이상 사퇴를 강제할 수단은 사실상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 6월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2022.6.30/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대통령·기관장 임기 일치시켜야"…'한국판 플럼북' 제언도

전문가들은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켜 '알박기 인사'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한 배경은 정책 전문성과 연속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였지만, 전임 정권이 새 정부의 국정을 발목 잡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거듭됐다는 지적이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공공기관은 정부의 일을 위탁해서 처리하기 때문에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해 정책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면서도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제도적으로 불일치하기 때문에 양쪽의 임기를 동일하게 맞춰서 불필요한 논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공기관장 임기 조정안은 '2+2년'과 '2.5년+2.5년' 등 다양하게 거론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장 임기를 현행 3년에서 2년으로 낮추고, 재임이 가능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며 "정권 내에 대통령이 임명한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끝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 경우, 새 정권이 출범하면 1년 내에 '공공기관장 물갈이'가 가능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공공기관장 임기를 2.5년으로 하고 연임이 가능하도록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통령 임기 5년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완전히 일치시키고, 차기 정권이 들어서면 새 정부 공공기관장을 일괄 임명하는 방식이다.

대통령의 광범위하고 모호한 인사권을 매뉴얼화하는 '한국판 플럼북'(Plum book)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미국의 정무·고위직 인사지침서로 활용되는 플럼북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할 수 있는 직책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장하되, 범위와 절차를 투명하게 밝히자는 취지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 또는 공기업 기관장은 인사검증을 통해 전문성과 도덕성을 검증받을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플럼북 제도를 정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국회의 검증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