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 사법의 길

수사관의 것은 수사관에게, 검사의 것은 검사에게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 뉴스1

검찰개혁에 대한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을 여야가 모두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수사는 사법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수사 기소 분리 원칙'에 여야가 합의하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수사 기소 분리'가 명문화되지 않은 점이 걸립니다. 부칙에라도 집어넣어야 하지만 이것 때문에 여야 합의를 깰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아쉽지만 이 합의와 약속이 반드시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야 모두의 임무입니다.

국민의힘이 나중에 약속을 안 지킬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년6개월 후에 총선을 바로 코앞에 두고 대국민 약속을 깨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지난 몇년 대한민국을 흔들어온 검찰개혁 이슈의 핵심은 '수사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입니다. 사법권력은 수사권, 기소권, 재판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통제받는 게 당연합니다. 민주공화국의 대원칙입니다.

재판권, 기소권은 입구와 출구 모두 견제를 받습니다. 재판권은 입구부터 기소권에 의해 통제받습니다. 기소된 내용 말고는 판사 마음대로 재판할 수 없습니다. 재판권의 출구는 2심, 3심에 의해 검증받고 견제받습니다.

기소권의 입구 역시 수사권에 의해 견제받습니다. 수사해서 확인된 것이 아니면 검사 마음대로 기소할 수 없습니다. 기소권의 출구는 재판에 의한 견제입니다.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이런 장치들도 모자라 재판권과 기소권을 아예 국민이 직접 통제하자고 하는 게 배심제, 참심제, 국민참여재판입니다. 이게 민주 사법의 방향입니다.

수사권력은 좀 특별합니다. 사법권력 중에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가장 직접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권력입니다. 기소권, 재판권에 비해서 임의성, 재량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수사관이 마음먹으면 있는 것을 덮을 수도, 없는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수사 권력의 출구는 영장제도, 기소권, 재판권에 의해 통제받지만 수사 권력의 입구는 명확하게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사 과정이 반드시 민주적으로, 사법적으로 통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하라고 만든 것이 검사라는 제도입니다. 검사는 수사 권력에 대한 사법 통제관입니다. 수사를 통제하라고 기소권, 영장청구권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검사가 직접수사, 1차 수사를 해왔습니다. 그 수사는 누가 통제합니까. 수사검사 본인이 스스로 통제해야 하는데 결국 '통제받지 않는 수사'가 됩니다. 윤석열 검찰 3년 동안 '통제받지 않는 수사'가 얼마나 위험한지, 대한민국을 얼마나 흔들어 놓는지 모두 봤습니다. "통제받지 않는 수사는 안 된다", 이게 지난 3년 검찰개혁 주장의 핵심입니다. 무슨 대단한 주장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원칙의 동어반복에 불과합니다.

그런 원칙에서 두 가지 주장에 대해 반대합니다.

우선, 검찰의 수사권 지키기 주장입니다.

검사가 아무리 수사를 잘해도 '통제받지 않는 수사 권력'을 계속 가지고 가겠다는 것은 민주공화국 안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백 보 물러서서 만약 검찰이 국민을 위해 수사권을 꼭 지키겠다면 최소한 검찰조직을 수사조직, 기소조직으로 분리해야 합니다. 수사검사는 검사 지위를 내려놓고 수사관의 지위에서 수사하고 다른 검사의 사법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고민도 없이 그냥 경찰보다 검찰이 낫다는 논리만으로 민주사법의 길을 가로막는 것은 안 됩니다. '통제받지 않는 검찰 수사'보다 '통제받는 경찰 수사'가 백번 낫습니다. 국민에게도 국가에도 이익입니다.

이 원칙의 연장선상에서 '검수완박'도 안 됩니다.

검찰개혁을 위한 정치적 구호로 주장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검찰이 밉다고 검사의 사법통제권까지 뺏는 것 역시 민주사법의 길이 아닙니다. 지난 십수년 우리가 밀고 온 검찰개혁은 '검수완박'이 아닙니다. '수사 기소 분리'입니다. '수사에 대한 사법통제'를 위해 수사 기소 분리를 주장한 것입니다.

수사관의 것은 수사관에게, 검사의 것은 검사에게 주자는 겁니다. 보완수사 등 사법통제에 해당하는 검사의 역할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우리는 검사의 직접수사를 '통제받지 않는 수사'라서 반대했습니다. 같은 원칙으로 경찰 수사가 '통제받지 않는 수사'가 되는 것도 반대합니다. '경찰 수사에 대한 사법통제'라는 검사의 본질적 임무를 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합의는 '수사 권력 사법통제' 원칙, '수사 기소의 분리' 원칙에 합의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검찰개혁이 정치적 싸움거리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윤석열 검찰 3년 동안 검찰개혁 이슈는 한국 사회의 블랙홀이 되어 정치개혁, 민생개혁 등 모든 개혁 의제들을 뒷전으로 밀어냈습니다.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검찰개혁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이상 중요한 숙제들이 대한민국에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검찰개혁은 국회와 정부, 국민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숙제이지 정치적 싸움거리가 아닙니다.

앞으로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법개혁특위에서 특히 다음 세 가지 검찰개혁 과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첫째, 수사에 대한 사법통제 제도, 수사절차 제도 전반을 정비해야 합니다. 검사가 수사 통제를 제대로 하려면 절차와 요건은 엄격하게 제한하되 법에 근거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소를 위한 보완수사'를 비롯해 법률적용, 증거판단, 인권보호, 객관의무 등 수사에 대한 사법통제를 절차와 제도로 정비해야 합니다. 원칙, 범위, 방법 등을 현장 경험을 종합해서 제대로 정비해야 합니다.

둘째, 수사권을 분산해야 합니다. 수사권은 기소권과 재판권에 비해 담당자의 임의 재량이 큰 권력입니다. 전국단위 위계조직인 경찰에 통째로 맡기는 것은 민주주의 권력분산 원칙에 어긋납니다. 한국형 FBI든, 중대범죄수사청이든, 국가수사청이든 경찰과는 다른 수사기구를 반드시 신설해야 합니다. 아울러 광역단위 자치경찰제도 시행해야 합니다.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면 경찰권력의 분권은 더욱 필요해집니다. 광역단위 경찰분권으로 제대로 된 자치경찰제를 해야 합니다.

셋째, 검찰, 경찰, 공수처 등 사법권력 기관의 감찰권과 인사권을 독립시켜야 합니다. 그동안 검찰과 경찰의 수사 기소의 공정성이 의심받게 된 데는 경찰, 검찰의 감찰제도가 부실한 탓이 큽니다. 조직 내부의 감찰로는 '제 식구 감싸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감찰을 위해, 사법권력 기관들은 예외 없이 조직 내부와 철저하게 분리된 외부 전문가들로 감찰위원회를 구성해 실질적인 감찰과 견제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아울러 인사권의 독립이 필요합니다. 사법권력이 늘 정치적 시비에 시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인사권이 정치권력에 장악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검찰총장, 검사장, 경찰청장, 광역경찰청장, 공수처장 등 사법권력 기관장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임명하는 '정치사법의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그 전 단계로 '국민참여 인사추천제'를 도입해서 사법기관장에 대한 정치적 시비를 끊어내야 합니다. 전문가의 숙의, 시민 참여 두 가지 절차가 보장되는 국민참여 인사추천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국회 사법개혁특위 활동에서 이 세 가지 개혁과제를 해결해서 지난 십수년 검찰개혁의 노력이 반드시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 민주사법을 외쳤던 수많은 국민의 절규, 수많은 갈등과 충돌, 거기 쏟아부었던 국민의 에너지, 이 모든 빛과 그늘이 모여져 마침내 민주사법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때까지 국민의 '호시우행'이 필요합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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