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42년 전, 세상은 소년공 안전에 관심 없었다"

"고참들은 소년공 상대로 권투 내기…'부라보콘' 값은 우리 몫"
"부상, 내색하면 프레스공 지위 잃어…숨기고 더 열심히 일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 행보 사흘째인 14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소 정문 앞 천막에서 열린 대우조선소 노조-시민대책위 타운홀 미팅에서 신상기 대우조선 노조위원장과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2021.11.14/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5살 어린 시절 프레스공으로 일하다가 사고로 왼팔에 장애를 얻은 사연을 공개하면서 "세상은 소년공의 안전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열다섯의 성공'이란 제목의 웹 자서전 10편에서 이같이 회고했다.

이 후보는 "스키 장갑과 야구글러브를 만드는 대양실업(으로 떠밀려갔다)"며 "그곳에서 '시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프레스기를 익혔다. 샤링기 유경험자, 매서운 눈썰미와 일머리 덕분에 나는 다른 소년공들보다 빨리 프레스기 한 대를 차지하게 됐다. 무려 프레스공!"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성공은커녕 고무기판 연마기에 손이 남아나질 않아 공장을 옮겼더니, 더 위험한 샤링기를 만났고, 샤링기에서 떠나오니 프레스기 앞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이어 "대양실업에서는 사흘이 멀다 하고 권투경기가 열렸다. 선수는 신참 소년공들이었고 선수 지명권은 반장과 고참들에게 있었다"며 "고참들은 자기들이 먹을 '브라보콘' 내기를 걸었다. 그리고 그 브라보콘 값은 권투 아닌 격투기에서 진 신참 소년공의 몫이었다"라고 기억했다.

이어 "경기에서 지면 브라보콘 세 개 값인 하루 일당을 고스란히 빼앗겼다"면서 "나는 그때 이미 왼팔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벼락같이 떨어지는 육중한 구형 프레스기가 왼쪽 손목을 내리치는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손목이 부어올랐지만 타박상이려니 하고 빨간약과 안티푸라민 연고나 바르고 말았다. 손목뼈가 깨졌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부기가 가라앉은 뒤에도 통증은 가시지 않았고 프레스기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면서도 "내색하면 프레스공 지위를 잃는다. 그래서 아픈 걸 참고 숨기며 더 열심히 일했다. 그게 평생의 장애가 될지 그땐 몰랐다. 프레스기에서 밀려나지 않는 것만 중요했다"고 했다.

이 후보는 "권투를 배워본 적도 없는 소년공들은 친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거나 형편없이 맞아야 했다"면서 "덩치가 작고 체력이 약하던 나는 경기를 빙자한 싸움에서 대부분 맞고 돈까지 뜯겼다"고 했다. 이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그저 공장을 옮기겠다는 말만 반복해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suhhyerim77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