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데이터3법'이 보여준 국회의 민낯
"선진국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우리는 4차산업 원유 채굴조차 막아놔"
"소가 있어도 고기를 못먹네"…학계도 절망감 토로
- 장은지 기자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데이터는 미래 4차산업의 원유다. 미국, 중국, 일본은 일찌감치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규제를 풀어 저만치 앞서가는 데 우리는 이 원유 채굴을 막아 놓은 것과 마찬가지라 아득하기만 하다"
지난 25일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에서 경제 세일즈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지시했다.
이날 '데이터3법' 가운데 하나인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또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간 수차례 국회를 찾아 호소하고 또 호소했던 박 회장은 다음날인 지난 26일 곧바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대로 가다간 데이터 3법이 해를 넘겨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해있다"며 이렇게 일갈했다.
지난 1년간 '데이터3법'의 통과만을 애타게 기다려온 금융·IT업계 등 산업계는 매일 목이 빠져라 데이터3법의 소관 상임위의 법안소위가 언제 열리는지, 열린다면 통과될 수는 있는 것인지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기술 개발과 사업 확장에 힘써야 할 청년 기업인들은 국회 문턱이 닳도록 관계자들을 만나며 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회사 사무실이 아니라 국회 의원회관에 출근도장을 찍으며 관련 보좌관들에게 법안 심사 일정을 묻는 안타까운 청년 벤처인들의 모습은 이제 국회에서 낯선 모습이 아니다.
박용만 회장은 "기업들은 각 당 대표 합의를 믿고 기다리고 있는데 처리가 안 되면 기업들은 어디에 맞춰 사업계획을 짜며, 어떻게 사업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기업과 그 사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 먹거리에 관한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비판했다.
더욱 허탈한 대목은 법안 자체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다는 점이다. 뉴스1이 지난 14일 '데이터3법' 소관 상임위인 △과방위(정보통신망법) △행안위(개인정보보호법) △정무위(신용정보법) 소속 의원 총 65명(과방위 유은혜 부총리 제외)을 전수조사한 결과, 데이터 3법 연내처리에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힌 의원은 과방위 0명, 행안위 0명, 정무위 2명으로 집계됐다.
여야가 싸울 땐 싸우더라도 국가 경제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법들은 통과를 시켜줘야 하는데 손혜원 무소속 의원 부친의 독립유공자 서훈 논란이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공방,예산안 공방 등의 정쟁이 법안의 숨통을 틀어쥐고 폐기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이다.
정무위의 경우 일부 소속 의원들이 이달 중순 핀란드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이 법안을 심사하는 소위를 한 번이라도 더 여는 것이 급했던 시기였다. 출장 목적은 '핀테크' 공부. 그러나 정작 '핀테크' 산업이 절실히 요구하는 법안 심사보다 '핀테크'를 핀란드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급했던 것인지 묻고 싶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는 지난 10월 말 성명서를 통해 "20대 국회 임기 동안 입법기관으로서의 소명을 다하지 않아 신용정보법을 비롯한 데이터3법이 폐기된다면 대한민국의 핀테크 성장의 날개를 더 이상 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의원들에게 와닿았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경제법안을 미뤄두고 책임공방만 벌이는 여야의 모습은 실망조차 아깝다. 더불어민주당 원내 핵심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민생법안이 통과가 안되는데 대해 여야 정쟁 때문이라고 자꾸 기사를 쓰는데 실제로는 자유한국당 탓이 아니냐. 제발 여야 모두 잘못했다는 식의 '양비론적 기사'는 쓰지 말아 달라"면서 야당에만 화살을 돌려 달라 부탁했다.
절망은 오롯이 산업계의 몫으로 남았다. 조성준 서울대 교수(정부 공공데이터전략위원장)는 27일 '2019 데이터 그랜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현재 데이터 규제는 소가 있어도 잡지는 말라는 식이다. 데이터 3법이 통과돼야 불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불만을 쏟아냈고, 박주석 경희대 교수는 "인공지능(AI)이 데이터를 필요로 하듯이 데이터도 인공지능을 필요로 한다"며 "지금은 개인정보 보호로 생태계 중간 중간이 끊겨 있고 데이터 공유도 어렵다"고 질타했다.
데이터 3법의 별명은 '개망신법'이다.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의 이름에서 한글자씩 따왔다. 데이터 혁신을 가로막는 법이어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자조'가 담겼는데 마치 이런 운명을 예측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씁쓸함을 숨기기 어렵다.
seei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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