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두환 나에게 배신감 느꼈을 것"

노, 회고록 통해 현대사 주역들 인물평

(서울=뉴스1) 진동영 기자 = 노태우 전 대통령이 9일 발간된 자신의 회고록(노태우 회고록, 조선뉴스프레스)을 통해 전직 대통령 등 주요 인물들에 대한 평을 내놓았다. 그는 회고록에서 1992년 대선 때 당시 여당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대선자금으로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공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그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고집도 보통 고집이 아니구나’하고 생각했다”며 “정치에서 쌍방 간에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적었다. 그는 “(김 전 대통령과) 2년간 매주 만나다시피 했고 내 옆에서 국가 경영을 봐오기는 했지만 진지한 면보다는 피상적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이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6공화국의 민주성마저 부인하고 있었다. 자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또 김 전 대통령에게 1992년 대선에서 3000억원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영삼 총재는 1992년 5월 민자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뒤 나에게 (대선에서) ‘적어도 4000억~5000억원은 들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며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과 이원조 의원을 김 총재에게 소개시켜주고 이들을 통해 2000억원을, 그 뒤 대선 막판에 김 후보측의 긴급 지원 요청에 따라 직접 1000억원을 지원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갖고 있었던 것에 대해 “김영삼 당선자가 청와대에 오려 하지 않는 등 후임자에게 자금을 전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족 식사자리에서 만난 박 전 대표와의 만남을 소개했다. 그는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하던 1978년 박 전 대통령의 신년 가족 식사자리에 함께했다. 박 전 대통령은 날밤 1개를 집어 '이것 참 맛있겠구나'라며 큰 영애(근혜)에게 주었다. 그런데 근혜양이 받지 않았다. 순간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자 옆에 앉았던 근영양이 '아버지 저 주세요'하고 받아서는 입에 넣어 깨물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박 대통령이 참으로 외롭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전임자였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활동적 인물이었다”라고 평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우정과 동지애가 강했다. 그러나 우정을 국가보다 상위에 놓을 수 없게 됐다. 인식의 차이로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도 권력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이) 대통령은 그만두되 물러난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직선제를 받아들인 1987년 6‧29 선언이 자신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에게서 “다른 야당 지도자들과는 다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적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수없는 난관을 겪어오면서 얻은 경험이 몸에 배어 있었다. 관찰력이 예리한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한 대목도 놓치지 않았다. ‘어쨌든 대단한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총명함이 많이 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1992년 대선 때) 김 총재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오판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연민의 정마저 일었다”며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1954년 9월 이 대통령이 육사를 방문했다”며 이 전 대통령과의 첫 인연을 소개했다. 당시 그는 이 전 대통령이 “옆의 국방장관에게 '여기가 어디지'라고 묻는 등 정신이 맑지 못한 상태였다”며 “어린 마음에도 아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종필 전 총리

그는 김 전 총리에 대해 “30년 가까이 국정에 몸담아 온 관록이 있어서인지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고 평가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전 대표

이 전 대표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이 전 대표에 대해 “율곡사업과 관련해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 역시 당당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조사 결과 잘못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의식해서인지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정 전 회장에 대해 그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정 전 회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와 '아파트를 평당 60만원에 지을 수 있다'고 했다는데 그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며 “한 달쯤 지나 전 전 대통령을 만났더니 '내가 그 영감에게 속았다'고 하기에 '빨리 아셔서 다행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정 전 회장의 인간됨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chind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