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회고록 발췌문 전문> ②권 '청와대 시절'

"직선제 개헌 반대 노태우 향해 수용 설득"

전두환 전 대통령 2016.4.13/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음 달 1979년 10.26 사태 이후 대통령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비화, 박정희,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기술한 ‘전두환 회고록’을 출간한다.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모두 2000여 페이지에 달하며 1979년 10·26사태 이후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기술한 1권 '혼돈의 시대', 대통령 재임 중 국정수행 내용을 담은 2권 '청와대 시절', 성장 과정과 군인 시절·대통령 퇴임 후 일들을 담은 3권 '황야에 서다' 등 총 세 권으로 구성됐다.

출판사(자작나무 숲)의 양해를 구해 권별로 발췌문 전문을 싣는다. 다음은 2권 발췌문 전문.

2권_청와대 시절 <노태우 후보를 설득하다> 중에서(629p~643p)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기로 마음을 굳힌 내가 가장 먼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여당 대통령 후보로서 정국을 돌파해나가야 할 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만나 내 생각을 밝히면서 설득을 하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나는 바로 다음날인 6월 17일 노태우 대표를 불렀다. 오전 10시 청와대 집무실에서 나는 마주 앉은 노태우 대표에게 먼저 긴 설명 없이 국민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서 직선제 수용을 전제로 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표는 순간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일언지하에 반대한다고 했다. 간선제 선거를 통해 어렵지 않게 당선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선거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을 노 대표에게 나의 지시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노 대표는 내가 직선제를 받아들이자고 할지도 모른다는 낌새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직선제 문제에 관한 한 내 소신은 한결같았고, 내가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그 어떤 작은 암시도 노 대표에게 준 적이 없었다. 더욱이 내가 노 대표를 갑자기 불러서 직선제를 수용해야 할 이유와 직선제를 통해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거를 먼저 충분히 설명하지도 않은 채 대뜸 직선제로 가자고 결론적인 지시를 내렸으니까 노 대표가 당황해하면서 내 지시에 거부감을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황한 모습을 보였던 노 대표는 금새 냉정을 되찾은 듯 평소의 차분한 목소리로 직선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노 대표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로 민정당이 4.13조치에 따라 호헌을 주장해 오다가 당론을 바꿔서 지금까지 내각책임제의 장점을 홍보해 왔는데 이제 와서 다시 직선제를 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민정당 동지들을 설득시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직선제 아래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노 대표는 얘기 끝에 “직선제 개헌을 선택할 경우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까지 했다. 노 대표의 이런 반응은 내 지시에 반대 의견을 밝히는 것이라기보다는 ‘반발’이라고 느껴졌다. 훗날 생각해보니 당시 노 대표는 “전 대통령 자신은 간접선거를 통해 쉽게 대통령이 되었으면서 나더러는 떨어질지도 모르는 직선제를 하라는 거냐.” 하는 생각에서 반발심을 드러냈던 것으로 짐작됐다.

직선제를 수락한다면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겠다며 강력하게 반발하는 노 대표에게 나는 차근차근 이유를 들어가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첫째, 갈수록 격화되는 소요를 물리적으로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데 5공화국 출범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비상조치를 취한 적이 없지 않은가. 나는 임기 중 군대를 동원하는 일을 끝까지 피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비상조치를 취하게 되면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고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도 장애요인이 될 우려가 있다. 둘째, 직선제 개헌이 안 되면 선거를 거부하겠다는 야당의 위협이 현실화돼서 실제로 선거를 보이콧하게 되면 단일후보가 되고, 그렇게 해서 당선이 된들 불안한 집권이 된다.

셋째, 야당이 우리의 의표를 찌르듯 현행 간선제를 기습적으로 수용하면서 선전전에 역이용하면 여론이 악화돼서 여당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설혹 현행 헌법으로 선거에 승리한다고 해도 곧바로 다시 개헌 요구가 불거질 것이고 그 결과로 개헌 정국이 지속되거나 새로운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면 국가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것이다. 다섯째, 직선제로 해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노태우 대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1971년의 대통령선거 때 얘기를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3선 개헌을 강행한 뒤여서 인기가 없었던 반면, 경쟁자인 김대중 후보는 김영삼 씨와의 공천 경쟁에서 역전승을 거두어 돌풍을 일으키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선제로 치러진 선거에서 박 대통령은 100만 표 이상 차이로 당선되었다.

노 대표는 박 대통령보다 얼굴도 잘 생기고, 말도 잘 하고, 정치에 때가 묻지 않아 신선하고 인상도 좋다. 거기에다 민정당은 창당 된지 6~7년이나 되어 전국적으로 조직도 탄탄하고, 5공화국이 많은 국정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은가.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도 좋아 박 대통령 때보다는 여건이 월등하게 낫다.

다만 노 대표가 정치적으로 크게 내세울만한 것이 없어서 그것이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직선제 수용 등 획기적인 정치선언을 해서 치고 나가면 급부상할 수 있다. 김영삼, 김대중 누가 나와도 자신이 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노 대표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는 노 대표의 그러한 입장을 십분 헤아렸지만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며 결심을 재촉했다.

다음날인 6월 18일 김용갑 민정수석비서관이 보고드릴 게 있다더니 직선제 수용을 건의했다. 서로 의논이 있었는지 박영수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3일째 교대로 같은 내용의 건의를 하고 있었다.

김용갑 수석은 "지금 중산층 시민 60%가 사회적 혼란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민주화의 결단을 내리면 이들 60%가 지지합니다. 대통령 선거는 반드시 이깁니다. 확신합니다. 약속하신대로 평화적 정권 이양을 실천하시고 민주화의 결단까지 내리면 누구나 각하의 영단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며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건의했다.

나는 김 수석비서관에게 안무혁(安武赫) 안기부장, 이춘구(李春九) 민정당 사무총장, 안현태 경호실장 등과 협의를 한 후 노태우 대표에게 가서 그대로 설명하여 이해시켜보라고 지시했다. 나는 이날은 노 대표를 청와대로 부르지 않았다. 적어도 하루 정도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루 뒤인 6월 19일 김용갑 수석을 불러 노 대표를 만난 얘기를 물어봤다. 나의 지시를 받은 김 수석은 당일 노 대표를 찾아가 40분 동안 설득을 해보았는데 노 대표의 동조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전날 나한테서 직선제를 받아들이자는 얘기를 듣고 반발했던 노 대표는 이날 이재형(李載灐) 국회의장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 대표는 내가 직선제를 받아들이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직선제로는 당선이 어려우니 전 대통령을 만나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재형 의장은 "나도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야당 생활을 하면서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이다. 내 마음에도 직선제가 들어 있다"고 말하면서 직선제를 해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의 결심을 따를 것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노 대표를 청와대로 들어오도록 했다. 보안을 위해 나는 노 대표를 청와대 별관으로 오게 했다. 오후 5시 아무도 배석시키지 않은 채 둘이 만났다.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으니 이제 노 대표도 나의 제안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확답을 준비해 놓았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노 대표는 직선제 수용 지시를 따르겠다고 간명하게 결심을 밝히더니 곧 긴장된 표정으로 바뀌면서 "그런데 제가 직선제 수용을 포함한 민주화조치를 건의 드리면 각하께서는 크게 노해서 호통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효과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의였다. 그 순간 나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즉답을 하지 않고 "생각해 보자"면서 일단 노 대표를 돌려보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노 대표가 건의한 내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직선제로 가면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치듯 반발했지만, 내가 그러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모르지 않는 노 대표로서는 어차피 정면 돌파가 불가피하다면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결정적인 승부수가 필요했을 것이다. 노 대표는 그때까지도 나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2인자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970년대부터 '40대 기수론'을 펴며 스스로 대통령 도전자로서의 위상을 쟁취한 경쟁자들에 비해 대통령 후보로서의 존재감이 미약했다.

그래서 그는 이미 고지에 올라 있는 강력한 야당 후보와 맞서기 위해서는 노 대표 자신도 바닥을 박차고 뛰어 올라야 하고 이때 바닥을 박차는 반발력이 커야 높이 뛰어 오를 수 있다. 그러니까 노 대표는 나에게 직선제를 포함한 민주화 조치를 요구하고, 나는 노 대표에게 호통을 치면서 그 건의를 거부하고, 노 대표는 나에게 강력히 반발함으로써 노 대표는 높이 뛰어 오르게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니까 직선제 수용이라는 극적인 조치의 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 조치가 어디까지나 노 대표의 외로운 고심 끝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은 것 같았다.

그가 구상한 방안은 선거에서 승리할 묘안을 짜내느라 동분서주하는 선거 전략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생각해볼 수도 있는 전략이었다. 정국의 흐름 자체를 한꺼번에 뒤바꿀 수 있을 정도의 파격적이고 감동적인 조치들을 대통령 후보의 독자구상으로 만드는 일 정도는 세월이 흘러 세상에 알려지게 되더라도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약세인 노 대표를 전격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직선제를 포함한 민주화 조치에 관해 대통령인 나와 여당의 대통령 후보인 노 대표가 진지한 논의 끝에 합의에 도달했고, 그러나 그 논의 과정은 밝히지 않은 채 그 합의의 결과인 민주화 조치를 대통령 후보인 노 대표가 발표한다 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시나리오다. 나는 이미 그런 정도의 진행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노 대표가 제의한 방안은 사실을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을 기만하는 연극을 하자는 것 아닌가. 역사에 비밀이 없고 언젠가는 밝혀질 텐데 그때 국민이 느낄 허탈감과 분노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노 대표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략에는 그 방법과 정도에 따라 채택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법이 아닌가. 내가 내 임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단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모든 영광을 노 대표에게 몰아주겠다는데, 노 대표는 그것도 모자라 나를 권력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인가. 나는 노 대표의 제의를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는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준비를 내밀하게 진행시키는 한편으로 개헌 촉구 시위가 전국적 규모로 확대되고 격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응책을 강구해야 했다. 비상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낌새를 비쳐야 하는 것이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군 관계자들을 소집해서 비상조치를 전제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디데이와 시간까지 정해줬다. 20일 04:00였다. 이 지시에 따른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오후에 정부와 민정당 관계자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나는 권복경(權福慶) 치안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력만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물었다. 권복경 본부장은 자신 있다고 보고했다. 나는 그날 오후 4시 병력 출동을 유보하라고 지시했다.

취임할 때 나는 내 임기 중에는 어떠한 위기가 닥쳐도, 그것이 외부의 공격이 아닌 한 결코 군을 동원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국내 소요사태에 군을 동원하는 순간 5공화국의 명예는 그것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날 나의 병력 출동 명령은 어디까지나 양동전술(陽動戰術)이었다. 올림픽 때문에 내가 결코 군대를 동원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서 상황을 극한으로 몰아가고 있는 세력에게 경고를 보내는 동시에, 망설이고 있는 노태우 대표로 하여금 파국에 이르기 전에 나의 결심대로 직선제를 조속히 수용하도록 결단하라고 촉구하는 뜻이었다. 일석이조(一石二鳥)를 노린 양면(兩面)동시공격이었던 것이다.

19일 오후 2시에는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한 릴리 미국대사를 접견했다. 레이건의 친서는 내가 4월22일자로 보낸 서신에 대한 회신이었다. 릴리 대사가 "… 군부대가 출동하여 … 없기를 바란다"고 한 데 대해 나는 "그것은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본다. 나는 항상 정치문제는 정치적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얘기해줬다. 릴리 대사는 이날 외에도 6.29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두 차례 더 청와대를 방문했다.

토요일인 6월 20일에는 안무혁 안기부장과 이춘구 민정당 사무총장, 청와대의 박영수 비서실장, 안현태 경호실장, 김윤환 정무수석비서관을 불러 "김용갑 민정수석이 직선제를 받아들이자는 건의를 하는데 절대로 이를 수용할 수 없으니 그렇게들 알고 더 이상 같은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이들이 이미 나한테 직선제를 수용하도록 건의한 바가 있고 또 노 대표와도 수시로 접촉할 기회가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내가 노 대표에게 지시한 내용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막을 쳐둔 것이었다.

일요일인 21일 오후 안기부장과 내무장관, 그리고 치안본부장을 비롯한 경찰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러 전국의 치안상황과 앞으로의 대책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나는 "군 출동 없이 소요사태를 수습하는 신기원을 만들도록 하라"며, "이제 군이 나오게 되면 앞으로 경찰은 설 땅이 없게 된다"고 경찰의 분발을 당부했다.

주말을 넘긴 6월 22일 오전 나는 노 대표를 청와대로 불렀다. 3일 전에 노 대표가 건의한 데 대해 내 의견을 말해주어야 했다. 나는 노 대표의 건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첫째, 세상에 비밀이 없는데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면 그 선언의 진정성과 가치가 훼손될 수 있으며 둘째, 더욱이 선거과정에서 알려지게 되면 국민을 기만했다 해서 결정적인 감표 요인이 될 것이고 셋째, 나는 민주화 조치를 끝까지 반대한 사람으로 영원히 낙인찍히는 결과가 될 것 아닌가. 국민을 속이는 연극을 해서는 국민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니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 말고 사실대로 발표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발표문 말미에 내가 자신의 직선제 수용 건의를 거부하면 모든 공직과 후보를 사퇴하겠다는 말을 붙이면 효과나 호응 면에서 3일 전 건의했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노 대표는 6.29선언 때 그 대목을 넣었다. 노 대표는 나의 설명에 대해 그 자리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 대표를 그렇게 해서 보낸 그날 오후에는 청와대에서 윤보선, 최규하 전 대통령을 만났다. 개헌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4.13조치를 거둬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틀 뒤인 6월 24일 릴리 대사가 오전과 저녁 두 번 왔다. 오전에는 이임하는 윌리엄 립시 한미연합사령관의 예방 때 배석하러 온 것이고, 저녁에는 개스턴 시거 미 국무성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의 예방에 배석한 것이다. 시거 차관보는 "최근 사태에 대해 각하께서 군의 무력으로 사태를 처리해야 한다는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의연하게 경찰력으로 치안을 유지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계심에 대해서 찬사를 드린다"고 했다.

시거 차관보는 이날 내가 김영삼 씨 등과 만난 사실을 지적하며 "대화를 각하께서 시작하셨기 때문에 저로서는 각하에게 새삼스럽게 진언드릴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레이건 대통령께서 취임하시기 이전에는 우방의 내정에 간섭하여 서로가 불행과 불이익을 자초한 사례도 없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 "미국정부는 나를 신뢰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습할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우리 양국 모두에게 엄청난 불이익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의 임기 중에는 군의 힘을 빌려 질서를 회복해야 하는 사태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또 "부득이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선량한 시민의 권리가 짓밟힐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설 때에는 필요한 강경한 조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므로 그러한 경우에는 그것이 나의 집권 연장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며 나라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니 귀국 정부는 한국정부의 조치를 지지해야 한다. 만일에 지지할 수 없다면 중립적 입장을 고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야당 지도자들을 만나는 시간이 있으면 그렇게 말씀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나는 이날 오전에 김영삼 민주당 총재, 오후에는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이만섭 국민당 총재 등 야당 대표들을 연쇄적으로 만났다. 그들의 주장은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야당 지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 직선제를 수용할 것을 건의했다.

나는 오전에 만난 김영삼 씨에게 4.13호헌조치는 사실상 철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영삼 씨와는 점심까지 같이하며 3시간을 만났는데 김영삼씨는 대화 중 김대중 씨를 언급하면서 출신지역을 거론했다. 나는 그 말은 못 들은 듯이 다른 얘기를 이어갔다. 이날 만난 야당 대표 가운데 특히 이만섭 총재의 얘기는 설득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애국심과 정치발전을 위하는 충정이 느껴졌다.

"저는 대통령이 되려고 혈안이 된 사람과는 다르고 진심으로 나라가 잘 됐으면 하는 사람입니다. 사심 없이 말씀드립니다. 과거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임기를 채우고 청와대에서 물러난 대통령이 없습니다. 이번에 대통령께서 깨끗이 물러난다는 약속을 믿고 왔는데 그런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업적이 역사에 영원히 빛나고 초석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받아서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헌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책임제의 내용보다도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자는 게 간절합니다.

국민이 원하는 직선으로 개헌한다면 각하께서는 민주주의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국민이 각하를 우러러보고 국민이 생각하는 어른으로 영원히 존경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헌 논의를 재개해서 9월에 해보자, 안 되는 경우 선택적 국민투표를 하자는 얘기를 합니다만, 털어놓고 얘기해서 그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직선안 표가 더 많이 나오면, 그래서 실행하게 되면 민정당 후보가 한풀 꺾이게 됩니다. 김영삼, 김대중 씨 싫다는 사람도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 손으로 민정당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데모하는 사람들도 김대중, 김영삼 씨가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완전히 대통령이 다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절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하께서 하신 일이 잘 되고 올림픽을 잘 치러야 되겠고 민주주의 전통을 살려 나가자면 직선제를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깨끗이 직선을 해서 국민 심판을 받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동교동, 상도동은 머리를 맞대고 싸우게 하고 이쪽은 정정당당하게 물가안정, 올림픽 가지고 심판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이만섭 총재에게 노 대표를 은밀히 만나 나한테 한 얘기를 그대로 말해주도록 부탁했다.

야당 대표들을 만난 뒤 이날 저녁에 노 대표를 다시 불렀다. 보안을 위해 별관에서 만찬을 하면서 이틀 전에 했던 얘기들을 다시 확인했다. 노 대표는 확실하게 "말씀대로 직선제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나는 노 대표에게 "나더러 반대해달라고 건의했던 것은 없었던 일로 하자. 그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고 위선적인 처사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데 나중에 진실이 알려지면 훗날 나와 노 대표를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타이르듯 말했다. 그리고 노 대표가 발표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전권을 위임할테니 노 대표가 책임을 지고 알아서 준비하라고 말했다. 6.29선언의 성공을 위해 노 후보가 구상하고 주도하는 정치적 제안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파격적인 조치라 하더라도 모두 받아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이미 모든 가능한 민주화 조치를 실행할 결의가 되어 있었다. 그 엄청난 선언이 누구의 이름으로 실행되어야 하느냐 하는 계산 같은 것은 나의 심중에는 없었다. 다만 보안 유지를 위해 "이 일은 아무하고도 상의하지 말고 혼자 구상하라"고 다짐해뒀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돌아간 노 대표는 그날 밤 안현태 경호실장에게 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직선제 수용 의사를 밝히면 전 대통령이 자신을 야단을 치며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해달라. 그래야만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재차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이어 25일과 26일에는 김수환(金壽煥) 추기경 한경직(韓景職) 목사 최월산(崔月山) 조계종 원로회의의장 서의현(徐義鉉 )조계종 총무원장 오녹원(綠園) 전 조계종총무원장 김성열金聖悅 동아일보회장 방우영方又榮 조선일보회장을 각각 접견했다. 토요일인 27일 아침에는 이종률(李鍾律) 공보수석과 김성익(金聲翊) 비서관을 불러 직선제 수용에 대비한 담화문 준비를 지시하면서 담화문 작성에 참고가 되도록 그간의 자초지종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 우리가 어떤 조치를 하든지 정정당당하게 보여야 된다. 한쪽을 눌러놓고 일방적 게임을 하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 정국을 안정시키고 민정당도 살 수 있는 것이며, 진짜 민주주의 한번 해보자는 게 내 소망이다. 간선제도 진정한 민주주의고 선거법을 고쳐서 직선제와 유사하게 하거나 내각책임제를 하는 것도 진짜 민주주의다. 선진화된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자는 게 먹혀드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직선제를 해버리자. 당당하게 국민의 심판을 받자. 지식층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원하고 있어 우리가 직선제를 안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직선제로 인한 혼란이 직선제를 하지 않아서 야기되는 혼란보다는 적을 것 아닌가. 국민이 원하면 한번 해보자."

유학 중인 장남 재국이 방학을 맞아 이날 돌아왔다. 그동안 국내 정치상황 변화에 무척이나 마음이 쓰였던지 공부하는 틈틈이 나름대로 의견을 정리해서 편지로 보내오곤 했는데 이날 직선제 수용 발표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노 대표를 만나는 자리에 배석시켰다. 이 회동의 내용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었고, 또 발표 때까지 노 대표를 만나기 어려울 것인 만큼 극비사항을 연락할 필요가 있을 때에 메신저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극도의 보안이 지켜져야 하니까 다른 누구를 시킬 수가 없었다. 극적인 발표 직전의 만남이어서 이날의 회동은 청와대 본관과 떨어진 별관에서 오후 2시에 이루어졌고 노 대표는 중앙청 서문에서 내가 보낸 청와대 차량으로 바꿔 타고 왔다. 노 대표는 자필로 써서 준비해온 발표문을 낭독한 뒤 공식 발표이후 자신이 취할 일련의 행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나도 노 대표에게 내가 취하게 될 여러 가지 조치들에 대해 설명해줬다. 시국선언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점검을 마친 뒤 나는 "이제 최종 결론이 났으니 최대한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청와대나 안가에도 일절 오지 말고 예상치 못한 급한 일이 생기면 우리 큰애를 통해 서면으로 상호 연락을 하도록 하라"고 노 대표에게 일러줬다. 또 "재야에 밀리는 상황에서 발표하면 빛이 나지 않으니까 민헌국(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 주최하는 대행진 행사의 추이를 지켜보고 일요일인 28일을 하루 더 지켜본 뒤, 조용하게 되면 29일 극적으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발표를 하루 앞둔 28일(일요일) 아침, 나는 김성익 공보비서관을 불러 노 대표의 발표와 관련된 일정을 알려주며 노 대표가 어제 직접 써가지고 와서 보고한 건의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목조목 구술해주었다. 담화문 작성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시를 받고 나간 김 비서관이 오후에 보고가 있다면서 접견을 요청했다. 집무실로 찾아온 김 비서관은 "이 발표는 각하께서 하셔야지 왜 노 대표에게 주십니까. 역사에 남을 선언인데…"라면서 선언 발표 주체가 내가 되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건의했다.

김 비서관은 나한테 오기 전에 먼저 재국을 찾아가 내가 생각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고 설득했는데 재국에게서 별다른 언질을 받지 못하자 다시 나에게 직접 건의를 하러 온 것이었다. 김 비서관은 내가 몇 달 후면 청와대를 떠나야 하는데, 국민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앙금들을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는 이 결정적인 기회를 왜 스스로 포기하느냐 하는 안타까움을 재국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나는 김 비서관에게 말했다. "이번 발표는 노 대표를 부각시키고 중단 없는 국가 중흥을 위해 내 신념을 담보로 택한 나의 마지막 카드이자 선택이다. 나의 이 민주발전을 위한 선택이 얽히고설킨 모든 것을 풀고 국가의 밝은 미래를 열고 올림픽을 성공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빌 뿐이다. 내가 역사에 남고 안 남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노 대표를 띄워서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가도록 하자.

나는 국민으로부터 칭송받지 못하더라도 노 대표가 부각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다. 내 명의로 발표를 하면 충격 효과가 있고 나의 인기는 올라가겠지만 선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 중심으로 하는 것이 무리가 없고 그래야만 당 대표인 노 후보가 뜨게 되어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김성익 비서관은 훗날 아쉬움과 불만 속에 쓰고 싶지 않은 6.29선언 수락 연설문을 썼다고 술회했다.

그런데 노 대표는 참으로 집요했다. 발표를 하루 앞둔 이날 또다시 안현태 경호실장에게 전화해서 "나의 선언을 각하께서 수락을 거부하도록 건의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안현태 경호실장은 이미 내 뜻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보고를 받은 나는 "내일(6월 29일) 발표를 하고 하루나 이틀 뒤에 청와대로 들어오도록 연락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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