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野 잠룡들, 위기돌파 해법은?

文, NLL 대화록 정국 위기 … "과감한 자기 성찰 필요"
安, 존재감·독자세력화 위기 … "프로화된 조직기반 필요"
孫, 당내 세력·리더십 위기 … "자유로움 적극 활용해야"

(서울=뉴스1) 김현 기자 = 18대 대선 당시 야권의 단일후보였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정국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고, 각종 대권주자 선호도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국회 입성 이후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데다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독자세력화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회의론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달 29일 8개월여간의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10·30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출마 여부가 정치권의 관심을 받으며 존재감이 부각됐지만, 김한길 대표의 '삼고초려'에 가까운 요청을 뿌리쳐 당내에서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이 현재의 정치적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는 야권내 역학구도의 변화와 직결될 수밖에 없어 향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노무현재단 주최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6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2013.10.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현재 야권 잠룡 가운데에선 문 의원이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문 의원은 지난 해 대선 당시부터 이어져 온 대화록 정국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다보니 여권의 대화록 공세의 칼끝은 항상 문 의원을 향해 있다.

지난 6월 여야가 '대화록 공개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이던 당시 문 의원은 당 지도부의 부정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던 대화록 원본 공개를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 검색 과정에서 사초 실종 사태가 불거진 데 이어 검찰이 최근 '참여정부측이 대화록을 미이관했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문 의원은 궁지에 몰려 있다.

문 의원은 지난 4일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지금까지 한마디로 확인된 것은 대화록은 있고 NLL(북방한계선) 포기는 없었다는 것"이라고 밝힌 뒤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 의원의 이 같은 소극적 대응에 민주당은 물론 야권 내에서 문 의원의 명확한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고, 나아가 책임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김한길 대표는 8일 기자들과 만나 "문 의원이 적절한 시점에 입장을 밝히지 않겠느냐"라고 사실상 문 의원의 입장표명을 압박했고, 조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대화록 정국은) 문 의원이 판을 키운 측면이 있지 않느냐. 본인 스스로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책임지겠다고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25일 오후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학교 피츠버그홀에서 이 학교 1학년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의 세계' 강좌, '청년과의 대화'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2013.9.25/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현상'까지 불러일으켰던 안 의원은 지난 4월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지만, 국정원 사태와 NLL 대화록 정국 등 거대 양당간 충돌 상황이 계속되면서 좀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주요 현안으로 대치할 때마다 안 의원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지난 대선에서만큼의 파급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우리나라 대의 제도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안 의원의 현안 대응에 있어 상대적으로 더딘 타이밍과 양비론적인 메시지의 한계 등에서 기인한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아울러 안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독자세력화도 10월 재보선 불참을 선언하는 등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풀뿌리 조직을 담당할 실행위원을 인선하고 있지만, 지난 29일 호남지역에 대해서만 1차 명단을 발표한 이후 추가적인 인선은 없는 상태다.

이로 인해 야권 내에선 안 의원에 대한 회의론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소위 '안철수신당'의 파괴력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하는 시각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동아시아미래연구소 창립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하며 국회를 방문한 학생들에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손 고문은 이날 '저녁이 있는 삶의 재구성-한국사회의 새로운 위기와 대안의 모색'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통해 9개월여간의 독일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사회의 발전 모델을 소개하고 한국사회의 미래 구상을 제시했다. 2013.10.8/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손 고문은 문 의원과 안 의원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정치적 위기감이 크지 않다.

도리어 10월 재보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 달 29일 귀국하면서 민주당 내에서 '손학규 구원등판론'이 제기되는 등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손 고문은 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성황리에 열린 싱크탱크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7주년 기념행사에서 '통합의 정치'를 내세웠고, 그 자리에 안 의원이 참석하면서 '손-안 연대' 가능성이 또 한 번 주목받기도 했다.

다만 이번 경기 화성갑 보선 출마 여부를 놓고 자신의 측근들 사이에서 엇갈린 메시지가 나오면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으로 비쳐진 데다 김 대표가 '당의 총의'를 모아 내밀었던 손을 결국 잡지 않으면서 당내에서 "자신만 생각한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상처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손 고문이 미묘한 시기에 귀국했고 그에 따라 공천이 늦어진 만큼 경기 화성갑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손 고문에게도 일정부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손 고문의 '조기 등판'을 놓고 당내 계파간 불협화음이 흘러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향후 손 고문의 정치적 행보에 있어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세 사람이 어떤 행보와 해법으로 자신의 위기를 돌파해 나갈지 눈길이 쏠린다. 그 성패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위상은 물론 자신과 뜻을 함께 하고 있는 세력의 성쇠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인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9일 뉴스1과 통화에서 문 의원에 대해 "문 의원은 NLL 대화록 정국을 통해 노무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과감한 자기 성찰을 통해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철근 새정치전략연구소장은 "대선 패배 당사자로서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했었는데, 너무 빨리 끝낸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의원에 대해 김 소장은 "안 의원은 대선이라는 큰 판에서 메시지 정치로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지금처럼 거대 양당이 이끄는 일상적인 정치판에서 상시적인 정치행위를 하는 데 익숙지 않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력화에 나서는 것인데, 시기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안 의원에겐 참신하지만 무능한 참모들이 아닌 프로화된 인적·물적 조직기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손 고문과 관련해 최 교수는 "손 고문은 문 의원과 안 의원보단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운신의 폭이 크다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며 "다만 자칫 옛 정치인, 이미지 쇄신이 필요하다.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국가 지도자다운 면모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도 "계파에서 자유로운 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gayunlov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