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 완강' 손학규, 출마로 선회할까?

김한길과 재회동…"시간 갖고 국민 뜻 들어보겠다" 여지 남겨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6일 저녁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한 식당에서 손학규 전 대표 등 전·현직 의원들과의 만찬을 갖는 자리를 찾아 참석 의원들과 인사 나누고 있다. 이날 단독회동 후 손 전 대표는

(서울=뉴스1) 김현 기자 = 무산될 위기에 처했던 민주당의 '손학규 구원등판론'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이 10월30일 치러지는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에 서청원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를 공천한 것을 계기로 민주당내에선 손학규 상임고문을 '서청원 대항마'로 출마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지만, 손 고문이 4일과 5일 연이어 불출마 입장을 명확히 밝히면서 무산되는 분위기로 흘렀다.

손 고문은 지난 4일 저녁 김 대표와 경기 분당의 한 식당에서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로부터 "당을 위해 역할을 해 달라"며 출마 요청을 받았지만, "지난 대선에 패배해 정권을 내주게 한 죄인이 1년도 안 돼 다시 출마하는 건 국민 눈에 아름답게 비치지 않을 것"이라고 고사했다.

손 고문은 또 김 대표가 다음 날인 5일 최원식 전략기획위원장을 통해 재차 회동을 제안하자, 측근을 통해 "출마 문제에 대한 내 입장은 확고하니 그런 수고를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재차 '불출마' 입장을 확인했다.

당초 당 지도부는 손 고문측이 "당에서 출마를 요청하면 검토할 것"이라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놓았던 터라 손 고문의 출마를 기대했다가 손 고문의 완강한 고사에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로 재부상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미(未)이관 사태'라는 수세국면을 돌파해 보려던 당 지도부의 전략에 결과적으로 빨간불이 켜진 셈이 됐다.

김 대표는 양승조 최고위원 등 손 고문과 가까운 인사들을 보내 손 고문의 의중을 파악함과 동시에 재회동을 제안했지만, 손 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선지 6일 정오까지만 해도 손 고문 주변에선 하나같이 "이미 끝난 얘기"라는 비관적인 전망만 흘러나왔다. 특히 손 고문측에선 단수후보로 내정돼 있는 정세균계의 오일용 현 지역위원장에 대한 내부 교통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 지도부가 손 고문에게 출마를 요청하고 있다고 불쾌한 심기를 내비치기까지 했다.

여기에 일부 초·재선 의원들은 물론 원외위원장들이 손 고문의 출마를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나돌면서 손 고문측은 "나가서 싸우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나가기도 전에 당에서 죽이려고 한다"는 감정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로 인해 '손학규 구원등판론'은 무산되는 게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흐름이었다. 김 대표의 한 측근 의원조차 "손 고문이 전혀 안 움직이시니 방법이 없다"며 "오 위원장을 공천하는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라고 밝혔다.

그러나 6일 오후 3시40분께부터 상황의 반전이 시작됐다. 김 대표가 이날 오후 예정됐던 공천심사위원회 전체회의를 연기시키면서 반전의 모멘텀이 마련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김 대표는 이후 오후 4시께 최 위원장을 통해 다시 한 번 손 고문과의 회동을 제안했고, 그간 회동조차 고사했던 손 고문이 수용하면서 분위기가 호전됐다.

오일용 위원장의 후원회장인 정세균 상임고문이 손 고문측에 "출마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도 상황 반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손 고문의 비서실장격인 김영철 동아시아미래재단 대표는 회동 전 기자들과 만나 "상황이 반전되고 있는 것 같다. 당이 훨씬 더 큰 위기의식을 갖고 계속 청을 하면 (가능성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강원도 춘천에서 전국 순회투쟁 중이던 김 대표는 일정을 축소해 마무리한 뒤 급거 상경했다. 김 대표는 당내 손학규계 인사 약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손 고문 귀국 환영 만찬 자리에 직접 찾아와 "당의 총의가 확실하다"며 또 한 번 손 고문에게 출마를 요청했다.

김 대표의 거듭된 요청에 손 고문은 "국민의 눈과 국민의 뜻을 깊이 있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조금 시간을 갖고 국민의 뜻을 들어보겠다"고 답변했다.

손 고문의 이 같은 언급은 기존 완강한 '불출마' 입장에서 다소 누그러진 태도로 해석됐다. 김영철 대표도 "(손 고문이) 국민의 뜻을 물어보겠다는 것이니 (출마) 여지를 완전히 차단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짚었다.

손 고문이 여지를 남기자, 당 안팎에선 손 고문이 결국 화성갑 보선에 출마하는 쪽으로 결단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결과를 예단해선 안 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손 대표가 김한길 대표에게 "아직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야 될 계제인지에 대해선 강한 의문을 갖고 있다", "원칙과 정도의 정치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는 등 여전히 재보선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떠난 이후 이어진 이날 만찬에선 손 고문의 출마 여부를 놓고 참석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낙연 의원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현재에 처한 어려움을 감안해서 참석자 전원이 빠짐없이 얘기했다"며 "방향이 한 군데로 모아진 것은 아니다. 의원 따라 달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학용 이춘석 이찬열 의원 등은 회동 전 기자들과 만나 "김한길 대표를 제외하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진정성이 없다"며 강하게 출마반대 의사를 밝혔다.

손 고문은 측근들의 의견을 청취한 뒤 "정권교체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숙 중인 사람이 8개월 남짓의 해외 체류를 마치고 들어오자마자 국회의원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국민의 눈에 옳겠느냐"고 말했다고 이낙연 의원이 전했다.

손 고문은 오는 8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산하 동아시아미래연구소 창립 기념 행사 때 최종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져 과연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한편, 이날 손 고문 환영 만찬엔 이낙연 신학용 이춘석 이찬열 전정희 전숙옥 김민기 이언주 의원과 홍재형 정장선 박은수 서종표 송민순 장세환 전혜숙 최영희 전 의원 등이 참석했다.

gayunlov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