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필요로 할 때마다 나섰다는 孫…불출마 배경은?

대선패배 책임론·정치 구상 감안해 "아직은 때 아냐" 판단한 듯

8개월 여의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귀국 소감을 밝히고 있다. 손 고문은 이 자리에서 정치권 일각의 10.30 재보선 출마설에 대해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5일 오는 30일 치러지는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에 구원등판해 달라는 당의 요청을 거부하고 불출마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 고문은 전날(4일) 저녁 김한길 민주당 대표를 경기 분당의 한 식당에서 만나 경기 화성갑 출마 요청을 받은 뒤 고사 의사를 전했으며 이날 다시 측근을 통해 화성갑 보선에 출마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손 고문의 비서실장인 김영철 동아시아미래재단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오늘 오후 김 대표가 최원식 당 전략기회위원장을 통해 손 고문을 오늘 오후 다시 만나 설득의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며 "이에 대해 손 고문은 '출마 입장에 대한 내 입장은 확고하니 그런 수고를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손 고문은 이번 보선 불출마의 이유로 우선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을 들고 있다.

손 고문은 전날 김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지금까지 당이 필요로 할때 제 몸을 사리지 않았지만 과연 지금이 그 때인지는 의문이 많다"며 "대선 패배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데 내가 나가면 유권자가 곱게 볼 수 있겠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대선 경선에 나섰던 유력 정치인으로서 대선 패배 이후 이를 성찰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선이 끝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그것도 대선 직후 떠났던 8개월 간의 독일 연수에서 지난달 말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보선에 출마하는 데 대해 '명분' 면에서 부담이 컸을 것이란 관측이다.

여전히 차기 대선 잠룡(潛龍)으로 분류되는 손 고문으로서는 독일 연수 결과를 바탕으로 귀국 후 차기 대선을 내다보며 차분히 야권 진영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입장에서, 서청원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와의 '1대1 빅매치'로만 흘러가는 양상이 달갑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손 고문 측근인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전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재보선이 7~10곳 정도 됐으면 중요한 의미를 가진, 관심 있는 선거가 됐을 텐데 두 곳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전부 새누리당 텃밭 지역이라 의미가 굉장히 축소됐다"며 "당이 손 고문까지 차출해야 할 만큼 그렇게 급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내 친노 세력과 그리 편한 관계가 아닌 손 고문이 이번 보선을 통해 조기 등원해 세를 모으는 것도 당내 갈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손 고문이 이번 선거에 출마해 또 한 번 새누리당 텃밭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둘 경우 즉각 당내 역학 구도 변화를 점치는 목소리들이 많아지면서 견제 움직임도 가속화할 공산이 큰 데다, 반대로 패배라도 할 경우에는 정치적 타격이 적지 않을 수 있다.

주요 재보선이 있을 때마다 구원등판론이 제기되는 것 역시 이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신학용 의원은 "차기 대선 후보급의 비중이 있는 정치인인데 보선만 있을 때마다 자꾸 출마하라고 하면 되겠느냐"며 "지금보다 더 중요하고 또 꼭 선택되고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 때 범야권을 이끌고 가는 위치에 나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손 고문의 불출마 입장 고수에 따라 이번 화성갑 보선을 통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을 앞세우려 했던 민주당의 전략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김 대표는 손 고문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정치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며 "민주주의와 민생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권을 심판할 필요가 있는 만큼 손 고문이 당을 위해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김 대표가 손 고문의 불출마 의사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손 고문에 대한 설득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민주당이 손 고문 설득에 결국 실패할 경우 가뜩이나 'NLL(서해 북방한계선) 대화록'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수세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재보선을 통해 국면 반전을 꾀해보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sanghw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