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건 죄 아냐"…탈북 16년 차가 말하는 '진짜 정착'[경계를 건넌 사람들]
하남시새터민연합회 최경심 회장
하남시 탈북민 잇는 구심점으로 활동…"정착의 빈틈 메우겠다"
- 윤주현 기자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모르는 게 곧 죄는 아니잖아요. 거기서(북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남한을 모르는 거죠."
하남시새터민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경심 씨(56)가 탈북민(북향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을 돕는 이유는 단순하다. 낯선 사회의 제도와 문화를 모르는 것은 개인이 잘못이 아니며, 먼저 정착한 이들이 그 빈틈을 함께 메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최 씨 역시 고향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지 16년 차의 탈북민이다. 이제 그의 시선은 자신의 정착을 넘어 아직 한국 사회에 마음을 열지 못한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데 향해 있다.
양강도 출신인 최 씨는 갑산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혜산시로 이주해 탈북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일대 건설사업소에 배치된 그는 거기서 남편을 만나 결혼해 두 자녀를 뒀다. 이후 장마당에 뛰어들어 신발과 옷을 등 돈이 될 만한 물건을 팔았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두 자녀의 생계를 책임졌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의 삶은 2010년 4월, 예상치 못하게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다른 이의 탈북을 주선해 준 친척이 중국에서 체포됐고, 자신도 당국의 조사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소식을 들은 지 5일 만에 그는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기로 결정했다.
탈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들을 포함한 일행 7명이 중국 공안의 검문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다. 우연히 떨어져 앉아 있던 최 씨만 검문을 피했다. 이후 그는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북한에서 탈출한 지 정확히 40일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홀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북한에 남겨진 가족을 데려오기 위한 브로커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최 씨는 하나원(탈북민 교육 기관)을 나오자마자 인천 남동공단에 취직해 주·야간 교대근무를 시작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하는 생활이 매일 반복됐지만, 돈을 벌기 위해 추가 근무를 자처했다.
그렇게 그는 반년도 안돼 3000만 원이 넘는 돈을 모아 브로커에게 송금했고, 최 씨가 한국에 입국한 지 약 6개월 만에 가족들도 차례로 한국에 입국했다. 최 씨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당시에는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릴 겨를이 없이 일했다"며 치열했던 당시를 돌아봤다.
가족이 다시 모였지만, '정착'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아이들은 너무 어렸고, 부모님도 모셔야 했다. 낯선 한국 사회에 적응해 생계를 꾸려가는 일은 탈북 못지않은 또 다른 과제였다.
보험설계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발견하면서 공장을 전전하던 최 씨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일한 만큼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보험 영업을 시작했고, 아직까지 그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보험 영업은 최 씨에게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동시에 자신이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하는 시련이기도 했다.
"손님들이 제 말투 때문에 첫 만남에 흠칫하는 경우가 많아요. 영업하려고 말하다가도 그 눈빛을 보면 딱 위축이 돼요. 눈빛을 보는 것 자체가 상처죠."
지난 2019년 경기도 하남시에 터를 잡은 그는 자연스레 지역 탈북민들과 가까워졌다. 이후 2022년 '하남시새터민연합회'의 회장을 맡아 단체를 운영 중이다.
처음부터 단체를 키우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 씨는 "처음에는 우리끼리 고향 이야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저 소통방을 만든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단체는 하남시 거주 탈북민의 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단체로 발전했다. 협의회는 한 민간단체와 함께 탈북민 가정에 매달 교육비를 지원하고, 자원봉사센터, 복지관과 함께 봉사 활동도 매달 진행한다. 하남시 등 여러 유관단체의 지원 아래 협업해 탈북민을 위한 지원 사업과 여러 행사도 열고 있다.
"우리도 잘살고 있다'라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후 협의회 사람들과 함께 후원업체를 구하며 정착 사업에도 뛰어들었죠."
최 씨는 한 달에 두 번 모이는 정기 소통 모임에 애착이 깊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탈북'이라는 교집합 아래 모일 몇 안 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모임에 참석하는 것 자체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많은 탈북민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취업 실패, 사기,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로 일부 탈북민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녹아들지 못한 채 고립돼 있다. 최 씨 또한 한국 땅을 밟는 것과 한국 사회에 온전히 정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씨는 결국 '진정한 정착'은 홀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닌, 주변의 도움이 더해져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 않냐"며 "본인의 노력으로 채울 수 있는 부분은 40% 정도고, 나머지 60%를 우리 공동체가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최 씨 역시 한국에 자리 잡은 탈북민들의 도움을 받았던 만큼, 이제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탈북민들에게 돌려줄 차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재 하남시에 거주하는 탈북민은 총 150여 명으로, 이 중 협의회에서 활동하는 인원은 50여 명이다. 최 회장은 지역 탈북민들이 서로 의지하며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이들을 연결하는 구심점이다.
활동이 이어지면서 단체를 찾는 탈북민도 조금씩 늘고 있다. 매년 5명 안팎의 탈북민이 새롭게 단체의 문을 두드리고, 탈북한 지 10년이 넘은 사람이 찾아오는 경우도 잦다. 모임을 통해 상처를 이겨내고 적극적으로 단체 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많다진다는 뜻이다.
"오히려 탈북한 지 10년이 넘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도 결국 '우리'라는 울타리를 찾더라고요."
최 씨가 협의회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크지 않다. 하남에 사는 탈북민들이 마음을 열고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낯선 탈북민들이 사회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주요 역할이다. 최 회장은 "신규 회원은 언제든지 대환영"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연합회의 문을 두드리는 탈북민이 한 명이라도 더 늘기를 바란다. 함께 밥을 먹고, 고향에서 먹던 김치를 담그며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만남이, 누군가에게는 한국 사회로 나오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1·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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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계선을 넘어 새로운 삶에 정착한 이들. 정착 이후에도 크고 작은 경계를 극복해 온 사람들의 삶을 기록합니다. 지리적 경계만이 아니라 문화와 관계의 새로운 세계를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삶 위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몰랐고, 알아야 할 삶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