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語사전] "해발은 햇발, 수자는 숫자"…북한엔 '사이시옷'이 없다?

편집자주 ...'조선말'이라고 부르는 북한말은 우리말과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 [北語(북어)사전]을 통해 차이의 경계를 좁혀보려 한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책과 신문 등을 읽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김정근 기자 = "위대한 사랑의 해발을 온몸에 받아안은 함경남북도 인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8일 제9호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본 함경도 일대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찾은 것을 두고 이같이 전했다. 그런데 문장 속 '해발'이라는 단어의 뜻을 유추하기가 쉽지 않다.

조선말대사전은 해발을 두고 '사방으로 뻗친 해살'이라며 '해빨'로 읽어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직접 발음하고 나서야 해발은 우리말 중 햇발을, 뜻풀이 속 해살은 햇살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문장에서 해발은 태양의 의미에서 착안한 '위대한 영도에 의한 권위나 영향력'을 뜻한다. 햇발로 표기돼 있었다면 이 같은 의미를 좀 더 쉽게 알아차렸을 듯싶다.

이러한 차이는 '사이시옷'의 표기 여부에서 비롯된다. 사이시옷은 두 단어 또는 형태소가 합쳐질 때 삽입되는 시옷을 말한다.

남한의 한글 맞춤법 규정에 따르면 두 단어 중 하나는 반드시 고유어여야 하고 기존에는 없었던 된소리가 나거나 'ㄴ' 소리가 덧날 때 사이시옷이 나타난다.

하지만 찻간·툇간·곳간·셋방·숫자·횟수 등의 단어는 한자어로만 이루어진 합성어임에도 사이시옷이 붙는다. 이외에도 다양한 예외 규정이 존재해 남한 언중들에게도 사이시옷은 어려운 문법이다.

그런데 북한말에는 사이시옷이 아예 없다. 깃발은 '기발'로, 바닷가는 '바다가'로 각 단어의 원형을 소리와 상관없이 그대로 적는다. 이에 따라 남북이 같은 단어를 씀에도 해석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피해복구 전구로 떠나간 수도당원들을 어찌 수자로 다 세일 수 있으랴."

지난 9일 신문에 실린 '수자'라는 단어도 이의 경우다. 문맥을 따져 '숫자'라고 소리 내 읽고 나서야 의미가 명확해진다.

조선말대사전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지 '수를 나타내는 글자'라는 설명과 함께 '수짜'로 발음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신문에 등장하는 '회수'도 자주 헷갈리는 단어다. 신문은 "먹이 주는 회수와 양, 시간을 잘 정하고 사양 관리를 규칙적으로"라는 식으로 '횟수'라는 단어 대신 회수를 사용한다.

우리말엔 '도로 거두어들이다'라는 뜻의 회수(回收)와 '차례'를 뜻하는 횟수(回數)의 생김새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북한식 표기에선 한자어와 소리·문맥 등을 확인해야 구별이 가능하다.

북한도 초기엔 사이시옷의 필요성을 인지했는지 '사이표'라는 기호를 통해 단어를 구별한 바 있다. 깃발이라는 단어에서 사이시옷을 빼고 따옴표 모양의 사이표를 활용해 '기'발'로 표기했다.

해당 규정은 1954년 '조선어 철자법'을 통해 시행됐지만 이후 1966년 '조선말 규범집'이 간행되면서 사이표를 폐기하며 북한에선 사이시옷이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최근 남한에서도 사이시옷 규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현실 발음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개정 혹은 폐지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남북 간 언어 차이가 사이시옷의 유무로 인해 더 커지고 있다며 남북이 이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해발[-빨]

[명사]

① 사방으로 뻗친 해살.

② 위대한 영도나 고매한 덕성으로 하여 널리 뻗치는 권위나 영향력을 이르는 말

■ 수자[-짜]

[명사]

수를 나타내는 글자. 곧 0, 1, 2, 3, 4, 5, 6, 7, 8, 9 같은 것.

■ 회수[-쑤]

[명사]

몇 회인가를 헤아리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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