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도, 정세도, 북한도 바뀌었다[한반도 GPS]
"초청하면 가겠다"는 답은 같지만, 한반도 정세가 달라졌다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6·15 남북공동선언 26주년인 지난 15일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할을 요청했습니다. 회담에서는 교황의 북한 방문 가능성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꽤 익숙한 장면입니다. 대통령이 바티칸을 찾아 교황에게 방북 의사를 타진하고, 교황은 "북한이 초청하면 가겠다"라고 답합니다. 이후 공은 평양으로 넘어가고, 북한은 침묵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이미 여러 번 봤습니다.
2018년 10월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접견 한 달 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즉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북한은 끝내 교황에게 공식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2021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 전 대통령이 다시 교황청을 찾았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교황은 '방북할 수 있다'는 의사를 재확인했지만 역시 평양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때는 비핵화 협상의 무산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격하게 악화한 것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 정부 때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북 논의가 있었습니다. 교황의 방북 문제는 20년 넘게 묵은 한반도, 대북 외교의 '미완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황의 방북 성사 가능성이 컸던 2018년 이후 교황도 국제 정세도, 북한도 모두 바뀌었습니다.
교황이 바뀐 것은 외교적 관점에선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레오 14세가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이라는 점에서입니다.
언젠가 정세가 바뀌어 레오 14세 교황의 방북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북미 관계의 변화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고려할 수 있습니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최근 "미국 교회와 추기경들의 협력이 있다면 북미 관계를 푸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교황이 미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북미 대화의 돌파구가 열린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과거와 다른 외교적 변수 혹은 작은 가능성이 하나 추가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
국제 정세의 변화는 교황 방북 가능성을 작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2018년에는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과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비핵화 협상이 큰 진전을 이루면서 평화적 분위기가 고조됐을 때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입니다. 북한은 대화를 거부하고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확장하면서 한반도 정세에 위협 요인이 됐고, 최근엔 중국과의 '혈맹' 관계도 전략적으로 복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 속에서 중국이 북한, 러시아와 손을 잡기를 원하면서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듯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평화의 상징인 교황의 방북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워 보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북한입니다. 북한은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규정하며 "비핵화는 불가역적으로 종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역시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하면서 평화나 대화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에도 평양으로 넘어간 교황 방북이라는 공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확인하고 세상에 던지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교황의 방북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의 핵심은 교황이 가느냐 못 가느냐, 북한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전망하고 점쟁이처럼 맞추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달라진 정세 속에서 북한이 과연 다시 문을 열 의지가 있는지, 연다면 어떻게 열 것인지를 한번 더 깊이 있게 탐구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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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반도 외교안보의 오늘을 설명하고, 내일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