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북한에 톤 높인 정부…당장 실익은 '대북 접촉보다 외교' 판단

정부 초기 대북 유화책 기조와 대비…유럽과 보조 맞추며 대미외교·방산 대응
'역대급 밀착' 북중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날 선 메시지

이재명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이사회에서 열린 한·EU 확대회담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26.6.10 ⓒ 뉴스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을 강하게 규탄하고 북한의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는 등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외교 행보를 보였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하고 북한이 러시아·중국과 밀착을 지속 강화하는 상황을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당장은 대북 정책보다 국제사회와의 외교를 강화하는 것이 더 실익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10일 제기된다.

한·EU, 북러 군사 협력 강력 규탄…北의 '비핵보유국 의무 준수' 요구

정부는 10일(현지시간) 오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제11차 한-EU 정상회담을 열고, 결과물이 담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과 EU는 성명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불법적인 군사 협력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러시아와 북한이 모든 관련 활동을 즉각 중단하고 유엔헌장 및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모든 결의를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또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부합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상 비핵보유국의 의무를 준수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포괄적 안전조치협정을 이행해야 한다는 점도 성명에 명시했다.

특히 공동성명에는 북한이 NPT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으며 어떠한 특별한 지위도 가질 수 없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외교가에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도출된 공동성명 가운데 북핵 문제와 북러 군사 협력에 대해 가장 강한 수준의 표현이 담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남북관계 복원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면서 북한을 직접 자극할 수 있는 공개 비판이나 대북 압박 메시지를 최소화했다. 대북전단 살포 통제와 대북 확성기 및 심리전 방송 중단을 시작으로,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의 정책과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유도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날 EU와의 공동성명을 보면 이같은 기조가 크게 선회한 듯한 기류가 감지된다.

'북한과 대화 시간 걸린다' 판단…국제사회와 보조 맞추기로 선회

정부가 이처럼 대북 메시지의 수위를 높인 것은 지난 3년여간 이어져 온 북러 밀착이 양자 간 여러 협약에 따라 제도화 단계로 접어든 데다, 최근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과 중국이 '역대급 밀착'을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적대적 대남 기조와 핵·미사일 위협이 중단되지 않고 끊임없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단기간 내 관계 변화를 끌어낼 요인을 현재로선 찾기 쉽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당장은 국제 공조 강화가 '실용외교'에 더 이익이 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8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의 정상회담에서 "패권주의와 강권정치를 반대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현재 행보에 북한과 중국이 합을 맞춰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시 주석은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협력 의지를 강화한 뒤 김 총비서를 만나서도 미국에 날을 세우는 메시지를 내면서 북한이 강경 행보를 중단할 이유가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시 주석은 북한과의 군사 협력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최근 수년간 핵능력 고도화에 집중하는 북한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 자체가 곧 북한의 핵보유국 입지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이는 북한이 대화로 나올 여지는 더 적어졌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이러한 중국의 행보는 중국이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해 동북아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행보를 보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도 시 주석의 방북 직전 핵보유국 입지 공고화를 위한 강경한 입장을 재차 표명하기도 했다. 시 주석의 방북 하루 전인 7일 북한은 김 총비서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을 앞세워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불퇴의 한계선이며 누가 인정하든 말든 엄연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총비서는 시 주석의 방북이 이미 확정된 지난 3일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는 새로운 우라늄 농축 공장을 시찰하고, 지난 6일엔 탄도미사일 발사체 생산 공장을 방문하며 은연중에 중국이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 정세를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보조를 맞춰 유럽과의 안보 협력 확대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과 러시아·중국이 밀착한 데다 고도화한 북핵 문제는 쉽게 대응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한미 합의를 이행하려면 미국과 서방 쪽에 강하게 밀착하는 행보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라고 말했다.

유럽 향한 방산 협력 메시지도 반영…'캐나다 잠수함' 수주에도 영향?

일각에서는 이번 공동성명이 유럽을 향한 방산 협력 의지를 보여주는 성격도 있다고 본다. 북한 문제를 매개로 한국이 유럽의 안보 현안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첨단기술·방산 협력 기반을 넓히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에 대한 공동 대응 수요가 커진 유럽의 입장을 관리해 한국 방산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유럽 중심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유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캐나다의 60조 원 규모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CPSP) 수주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유럽의 마음을 얻는 것이 캐나다의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다.

다만 이번 공동성명은 북한의 즉각적인 반발을 살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대북정책 추진에는 당분간 '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의 국제 정세를 '신냉전'으로 규정한 김정은 정권은 중국·러시아와의 전략적 연대를 핵심 생존 전략으로 삼고 있으며, '비핵화'와 핵보유국 불인정이 '주권 침해'라며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