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피폐했던 우리 농촌"…당 대회 앞두고 선대 '저격'한 김정은

'김일성표 농촌 정책' 비판적 관점으로 접근…'농촌 현대화' 부각
9차 당 대회서 '김정은주의' 강화 가능성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삼광축산농장 조업식에 참석해 연설 중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새롭게 건설된 대규모 축산농장에서 선대 지도자들의 농촌 정책을 비판하는 연설을 해 주목된다. '농촌 현대화'를 수년째 추진 중인 김 총비서가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선대 지도자들의 기조를 성역시하는 관례를 깨는 모습을 보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김 총비서가 지난 2일 평안북도 운전군의 삼광축산농장 조업식에서 한 연설 전문을 실었다. 이번 사업은 오래된 삼광축산농장을 현대적 방식으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진행됐다. 북한이 지난 2024년 공표한 '지방발전 20X10 정책' 등 수년간 집중해 온 농촌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김 총비서는 연설에서 "농촌의 세기적 낙후성이 다분했던 운전군의 막바지골이 현대 농촌과 현대 축산의 미래를 직관하게 하는 표준 실체가 됐다"라면서 "진짜 천지개벽이 일어났다"라고 치켜세웠다.

특히 그는 "역사적으로 농촌 문제와 관련해 당 정책도 많이 제시되고 '사회주의 농촌테제'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도 반세기 이상이나 벌렸다고 하지만, 어째서 우리 농촌들이 피폐한 상태를 가시지 못했는지를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사회주의 농촌테제'는 김일성 주석이 지난 1964년 2월 발표한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가리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 차이를 없애고 협동조합 체제의 농장을 추진한다는 내용으로, 북한 농업의 기본 지침서와도 같다.

이날 김 총비서의 발언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추진한 농촌 정책이 결과적으로 '틀렸다'라는 지적을 한 것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다. 김 총비서는 "솔직히 지난 시기 농촌 건설에서 말공부만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행성, 가능성도 없는 정책은 이론에 불과하다"라거나 "농촌에 대한 국가적 투자나 지원이 산발성과 일시성, 과시성 측면에서 진행된 것도 농촌 건설에서 범한 오류"라며 앞선 농촌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이같은 발언은 '농촌의 현대화'가 시급한 과제이며 이번 삼광축산농장 현대화가 앞으로의 농촌 정책의 모델이 될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전국 각지의 간부들에게 '과거의 방식'을 버릴 것을 강하게 촉구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선대 지도자들의 정책에 오류가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수령 무오류론'이라는 관습을 정면으로 깨는 행보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모습이 집권 15년 차에 접어들면서 자신만의 통치 이념의 고착화에 확고한 자신이 생겼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앞서 김 총비서는 지난 2024년 12월 20일에도 성천군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사회주의 농촌테제'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반면, 자신이 2021년 연말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새 시대 농촌혁명강령'은 짧은 기간에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자찬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총비서는 집권 10년 차인 지난 2021년 8차 당 대회를 기점으로 점차 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노선의 폭을 넓히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북한 매체에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을 '4·15'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을 '2·16'으로만 표기하며 우상화의 상징을 지워나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곧 개최할 9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 고유의 통치이념인 '김정은주의'가 확립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김 총비서의 과감하고 이례적인 연설은 당 대회에서 새 통치이념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게 한다.

북한이 '김정은주의'에 김 총비서의 핵심 통치이념 중 하나인 '우리국가제일주의'나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중점적으로 반영해 관련 내용을 공식적으로 당 규약에 명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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