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남긴 남북관계의 질문, 30년 기자의 답 [155마일]

안정식 전 SBS 북한전문기자 인터뷰
"北에 대한 관점 보다 '팩트'가 중요…통일 이야기 이어가야"

편집자주 ...155마일은 남북 사이에 놓인 군사분계선의 길이입니다. 이 경계의 실체는 선명하지만, 경계에 가려진 사실은 투명하지 않습니다.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되, 경계 너머 북한을 제대로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안정식 전 SBS 북한전문기자가 서울 종로구 뉴스1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발표하고, 급히 저녁 뉴스를 만든 뒤 퇴근하던 그 순간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분단 상황 속에서도 남북이 대립을 넘어 협력과 공존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던 개성공단은 가동 약 11년 만인 2016년 2월 전면 중단됐다. 당시 안정식(55) 전 SBS 북한전문기자는 통일부 출입 10년 차를 맞고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흐른 2026년, 기자 경력 30년을 넘긴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풍경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1988년 7·7선언으로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린 지 38년이 다 되어가지만, 냉랭한 남과 북의 관계는 다시 '제로 베이스'로 되돌아간 듯하다.

지난 8일 뉴스1과 만난 안정식 전 기자는 지난해 12월 31일을 끝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최근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대우교수 직함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대학 강의와 함께 개인 유튜브 채널 '안정식의 U(unification)코리아'를 통해 북한 정세 분석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쉽게 풀어 설명해 나갈 계획이다.

안 전 기자는 1995년 SBS에 입사해 2006년부터 북한 관련 소식을 전해왔다. 바쁜 기자 생활 중에도 그는 공부를 병행하며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석사학위, 2007년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자주적 대북정책은 가능한가'(2007), '빗나간 기대: 준비되지 않은 통일'(2020) 등이 있다.

'역사는 과연 발전하는 것일까'···남북관계 새로운 시각 갖게된 계기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2월 내려진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 조치는 안 전 기자에게 남북관계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게 '개성공단'은 남북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워진 '공든탑' 같은 존재이자 마지막 남은 '남북 교류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고 한다.

"3~4개월을 방황하면서 생각했어요. '왜 무너졌을까'. 근데 사실 그때까지는 공든탑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벌어지면 안 되는 일이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끔찍하니까. 그런데 일이 발생하고 나서야 남북 양쪽의 원인을 직시하게 된 겁니다. 저에게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남북 문제를 접근하게 되는 전환점이 됐습니다."

개성동단의 폐쇄 전에도 남북 간 위태로운 순간들은 많았다. 개성공단만 해도 2013년에 북한이 출입금지 조치를 취해서 몇 개월씩 가동이 멈추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넘겼다.

하지만 결국은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고, 남북이 교류·협력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통일'이라는 지향점으로 가고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았는데,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서 '역사가 과연 발전하는 것이 맞을까, 퇴보하는 것은 아닐까', '남북관계가 진짜 근본적으로 나아질 수 있는가'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취재에 대한 회의감은 더 냉철한 원인 분석으로 이어졌다. 안 전 기자는 개성공단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김씨 일가의 세습으로 인한 북한 체제의 경직성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바뀌는 한국의 상황을 주요 원인으로 뽑았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3대째 이어지는 북한 세습 정권의 경직성은 개방을 극도로 피해 왔다. 주민들이 외부 정보를 접하게 되면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상화'가 깨지면서 체재 유지가 어려운 것이 북한 체제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체제가 용납할 수 있는 개방은 개성공단처럼 '모기장식 개방'으로, 그 이상의 외부 소통은 어렵다는 현실은 상수인 셈이다.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의 비일관성과 북한 체제의 경직성, 두 개의 조건 중 하나라도 당분간 변할 기미가 없다면 교류·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남북 간 하나가 되는 통일은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안 전 기자는 설명했다.

경기 파주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2017.12.28/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북한 문제는 관점보다 '정확한 팩트' 보는 것이 중요"

그럼에도 안 전 기자는 여전히 '통일'을 추구한다. 지금 당장 통일에 가까워지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단 상태가 평온하다'라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 조사에선 '평화 공존'과 '통일' 중에 무엇을 선호하냐고 물어요. 그러면 '평화 공존'을 선호한다는 답이 더 많이 나와요. 그런데 평화 공존과 통일을 분리해서 물어보면, 은연중에 '통일은 평화롭지 않다'는 인식이 생겨서 평화 공존이 모범 답안이 되는 경향이 짙어져요. 하지만 통일 없이 안정적인 평화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해야 합니다."

안 전 기자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함정은 북한을 연구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봤다. 그는 '진보 또는 보수'라는 틀에 매몰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보다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분석하는 방식을 찾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저는 북한 문제를 다룰 때 '어떻게 보는 것이 북한을 정확하게 보는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해요. '정확한 팩트가 무엇이냐'는 거죠. 모든 것에는 관점과 사실이 있는데, 관점이 강하면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커지고, 심지어 사실을 배제하려고 하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그는 최근 정부가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특수자료가 아닌 일반자료로 전환한 것에 대해 일정 부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신문을 보도록 하는 것이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 국민 수준을 고려했을 때 유해한 영향을 얼마나 줄 수 있다고 막느냐'라는 관점에서는 정부의 입장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남북 통합으로 가는 길에서 필요한 '남북 언론 개방'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사안의 핵심은 '북한이 남한 매체를 보게 하는 것'인데, 향후 '남북 상호 언론 개방'이라는 안건을 제시해야 할 때 쓸 수 있는 카드를 미리 써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덧붙였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2025년 9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딸 주애가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 동행한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의 권력 승계는 한반도 구도 바꿀 중요 변수···"통일 기회 잡아야"

우리가 김정은의 딸 주애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안 전 기자는 설명했다. 단순히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에서의 결국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가 '북한의 절대 권력에 공백이 올 때 북한 체제에 급변 사태가 생길 수 있는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작기에 핵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더 진전된 해결 방법을 찾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북한에 변화를 야기할 유일한 가능성은 체제의 균열인데, 당과 군 내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점에서 권력 승계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균열이 그나마 정세를 바꿀 현실적 변수라는 게 안 전 기자의 생각이다.

"김정은의 후계자가 성인이 되고 통치할 때까지 김정은이 쓰러지지 않고 정권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애가 성인이 됐을 때 나라를 경영할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 등 아직 검증된 것은 없습니다. 이런 변수들 사이에서 북한의 권력이 제대로 승계되지 못할 때 한반도 통일의 길로 가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죠. 따라서 저는 북한 권력의 다음 행보가 어느 쪽으로 가느냐는 것이 핵 문제보다 더 중요한 측면이 있다고 봐요."

현재로서는 북한의 체제가 아주 견고해 보이지만, 600여년의 조선왕조만 봐도 왕위 계승이 늘 안정적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북한의 세습이 4대를 이어간다고 해도, 앞으로 수백 년이 유지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어느 시점에서는 북한의 최고 권력에 균열과 이상이 생길 것이고, 그때 한반도 구도가 결정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도 더 높다는 분석이다.

기자라는 직함은 내려놓았지만, 그가 여전히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반도 구도 변화의 최적기를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통일의 길을 갈 수도 있고, 그 기회를 못 잡을 수도 있어요. 어느 역사를 보나 결국 '국민들이 의지가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결정적인 시기가 도래했을 때 '우리가 같은 민족이었고 그래서 통일해야 합니다'라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통일된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때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겠죠. 하지만 만약 결정적인 시기에 '우리끼리 살면 돼'라고 통일하겠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통일이라는 기회는 오지 않을 겁니다."

최근 정부에서 제기하는 '평화적 남북 두 국가론'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안 전 기자는 이 구상이 자칫 '통일 회의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중국이 수십 년간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일관하게 밝혀 온 것은 언젠가는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꾸준히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와 달리 남북 모두에서 '두 국가론'이 제기되면 '한반도에서 통일은 물 건너갔다'는 통일 회의론을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론'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지만, 안 전 기자는 '두 국가'라는 개념을 언급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정식 전 SBS 북한전문기자는 "'두 국가'라는 개념을 이야기할 때는 '신중한 접근'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 News1 오대일 기자
시작된 제2의 인생···북한·통일 이야기는 계속

그는 방송기자로 만 30년 2개월을 근무했다. 이 중 20년 동안 통일부를 출입하며 북한 취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그는 "회사에서 출세할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차장이나 부장 같은 직함을 다는 대신, 현장에서 더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뛰어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안 전 기자가 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언론'외 분야의 학업을 병행하는 기자는 드물었다. 당시 사내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기자·PD·아나운서들이 수십 명 있었지만 대부분이 경력을 살린다는 차원에서 언론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1995년 입사한 그는 1999년부터 석사 과정을 시작했는데, 다른 동료들보다는 비교적 이른 연차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을 당시에는 '이제 내 인생에서 공부는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회사에서의 승진이나 출세에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다시 공부를 결심하게 됐다.

그는 "무엇을 공부할지 고민하던 중, 북한이라는 존재가 여전히 남아 있고 뉴스라는 형식이 유지되는 한 북한 문제는 결코 뉴스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했다"며 "개인적으로 남북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점도 분명 영향을 미쳤다"라고 말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안 전 기자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전히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북한 매체와 국내 언론기사를 챙겨본다. 다만 매체를 접하는 방식에는 변화가 생겼다. 북한 관영매체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과거처럼 해외 경로를 통해 확인하지만, 국내 언론기사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이제 모든 기사가 모여 있는 회사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일 그는 북한 정세를 해설하는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처음으로 올리며 '초보 유튜버'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영상 구도와 편집, 업로드 과정은 유튜브에 올라온 교육 영상을 참고해 익혔다고 한다. 촬영은 기존에 사용하던 스마트폰 두 대로 진행했고, 거치대 두 개와 유선 마이크 하나를 추가로 구매해 초기 투자 비용은 불과 약 18만 원이다. 방송국은 떠났지만, 그는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취재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또 다른 현장에서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갈 준비를 마쳤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