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북한…내년 초까지는 '전략적 관망' 예상

북중, 북러 관계 강화 지속…한미와는 '핵' 놓고 기 싸움 양상
美에 '대화 조건' 제시했지만…내년 초 대외 노선 재정비 후 대화 본격화 예상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올해 하반기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보인 북한이 내년 초까지는 '전략적 관망'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7일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달 최고인민회의에서 "시간은 우리 편",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우리에게는 더 유리하다"라며 넘치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 2021년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수립한 '경제·국방 분야' 5개년 계획을 매듭짓는 북한은 이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당분간 급격한 변화보다는 내년 초로 예상되는 9차 당 대회 전까지 체제 결속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당 대회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변화된 대외 전략을 공개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러관계 강화에 북중관계 복원으로 '반미 연대' 전선 확장

올해 북한의 대외 행보는 '반미 연대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 2022년부터 이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을 계기로 북러 밀착이 강화된 사이 소원해진 북중관계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복원하는 동향이 뚜렷했다.

지난 2월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은 왕야쥔 주북 중국대사와 만나 약 1년 만에 북중 외교 당국 간 고위급 소통을 재개했다. 이어 3월엔 북한 외무성이 7년 전 북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극진한 환대를 재조명하며 "북중 친선 관계를 새로운 높이에서 강화·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올해는 중국이 '항미원조 전쟁'(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다)이라 부르는 한국전쟁 참전 75주년이 되는 해다. 양국은 이를 계기로 '혈맹 관계'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그동안 정체됐던 대화를 복원했다.

특히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행사에 참석하며 집권 후 처음으로 다자외교 무대에 데뷔했다.

국제사회가 실시간으로 행사를 지켜보는 가운데, 김 총비서와 시진핑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다른 정상들보다 앞에서 나란히 걷고, 톈안먼 망루에 올라 세를 과시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김 총비서가 받은 각별한 대우와 함께, 미국에 맞서는 3각 결속을 부각하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와 함께 최선희 외무상이 단독으로 중국을 방문해 국제 정세를 논의하고, 유엔총회에 7년 만에 고위급 인사를 파견하는 등 북한은 과거와 다른 양상의 적극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호국 중심의 양자외교에서 다자외교 무대에서도 입지를 높여 향후 협상과 대화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와의 밀착은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북한과 러시아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사실을 공식 인정하며 밀착을 '혈맹'으로 높이는 행보를 보였다. 이후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각종 반대급부를 얻으며 양국 간 협력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된 이후에도 북러관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북한이 미국에 대한 대항력을 높이기 위해, 러시아와의 전략적 연대를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임기 때인 2018년 6월 12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합의문을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대미 강경 노선 속 '조건부 대화' 신호…9차 노동당 대회 결정에 주목

북한의 대미 메시지에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김 총비서는 최근 발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비핵화를 포기하라'면서 대화의 문턱을 더 높였다.

지난해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대미 강경 대응 전략'을 선포하며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에 더 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여전히 한미 및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등을 경계·비난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달라진 기류가 감지된다.

김 총비서는 지난 20~21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핵을 포기시키고 무장 해제시킨 다음 미국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세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며 "우리는 절대로 핵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비핵화를 포기한다는 '절대적 신뢰'를 보여 줘야 함을 부각한 셈이다.

이와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장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의 '대북 제스처'가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북한은 APEC 계기 트럼프 대통령의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년 초로 예정된 제9차 노동당 대회에서 새로운 대외 노선을 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 대선 이후 바뀐 국제 정세, 중·러와의 관계 재편, 그리고 내부 결속 수준을 종합해 향후 5년의 외교 구도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3일 중국의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걷는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빛낼 성과' 많은 北, 대내 결속에 집중하며 9차 당 대회 준비

북한은 일단 올해 연말까진 김정은 체제 강화와 결속에 더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주요 매체들은 오는 10일 당 창건 80주년을 앞두고 김 총비서의 지도력을 찬양하는 보도를 늘리고 있으며, 각종 경제 성과를 부각해 민심을 다지고 있다.

특히 민심과 직결된 경제 분야 성과 과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자력갱생' 노선을 내세우며, 대북제재 국면 속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냈다는 선전이 이미 수시로 반복되고 있다.

아울러 올해를 '보건혁명의 원년'으로 선포한 북한은 의료 인프라 확충, 병원·약국 서비스 개선, 방역체계 강화 등을 추진해 왔다. 평양종합병원뿐 아니라 지방 시·군 단위에서도 보건시설 건설이 이어지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대외 개방 확대를 앞둔 조치로도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역점 경제사업으로 매년 20개 시·군에 공업공장을 세우는 '지방발전 20X10 정책'이 추진 중이며, 여기에 양곡관리시설·병원·과학기술보급 거점 건설을 추가하는 등 지방경제 살리기에도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21년 초 제8차 당 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 발전 5개년과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을 올해까지 마무리하고, 새로운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제9차 당 대회를 '성대하게' 치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오는 10일 당 창건일은 당 대회를 위한 분위기 추동의 주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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