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말 '두 국가'가 현실이자 최선일까 [두 국가 딜레마]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분단 80년을 지나는 남북은 '특수관계'인가, '국가 대 국가 관계'인가. 최근 불거진 두 국가 논의는 냉전 구도 속 체제 경쟁을 통해 오늘날에 이른 남북관계의 구조적 한계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 과거 남북이 이 관계를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를 살피는 것은 현재의 논의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가늠하는 단서가 된다.

남북관계를 현실적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두 국가론' 혹은 유사한 인식을 제도화해 공존의 틀을 마련하자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반면 이를 공식화할 경우 불거질 사회적 파장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면 아직 때가 이르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제사회의 반응과 대응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변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국가론은 한반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독립된 국가가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남한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의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을 통해 처음으로 북한은 '상대할 수 있는 체제'로 인정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다만 이 선언에서도 북한을 국가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북한 역시 오랫동안 '1민족 1국가' 원칙에 기반한 연방제 통일 방안을 고수해 왔다. 1973년 6·23 선언 때 북한은 지금과 달리 "'두 개의 조선'을 조작하려는 책동"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선 사실상 두 국가로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북한은 같은 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 협상에서 '두 국가 체제' 명시를 거부했다. 당시 합의문에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한 이유는 당시 남북이 서로를 통일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이길 수 있는'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북한은 2023년 12월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노선을 180도 전환했다. 남한을 지칭하던 용어를 '남조선'에서 '대한민국', '한국'으로 바꿨다. 그리고 한국 정부 역시 '현실론'에 입각해 두 국가라는 개념을 이제 인정해야 한다는 기조를 취하고 있다.

북한이 자신감 있게 '두 국가'를 주장하고 나선 배경에는,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우군을 동시에 업은 북한의 외교적 상황이 깔려 있다.

일각에서 '북한의 국운'을 바꾼 계기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해방 이후 가장 공고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최근 중국도 북한과의 거리를 다시 좁히면서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우군'으로 역할을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18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남한과의 교류 재개를 적극 추진했으나, 미국이 실권을 쥐고 있는 각종 대북제제에 막혀 성사되지 못하자 남북관계 개선에 회의적으로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더 이상 남한 측과 대화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없으며 이제 협상과 대화의 상대는 미국이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두 국가'를 공식 인정하게 되면, 앞으로 북한 문제에 있어 개입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까지 미국 주도의, 혹은 중국의 영향력이 큰 북핵 관련 정세에 정부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한 민족'인 북한 관련 문제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며, 북한 역시 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논리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남북을 서로 다른 국가로 인정한다면, 남북은 이들 '4강국'의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외교전을 배려 없이, 온전히 마주해야 하는 냉정한 현실에 놓일 수도 있다.

이를 잘 알고 있을 북한도 최근 외교를 통해 '두 국가론'의 고착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러시아 국립연구원 소속의 한 연구자가 북한의 '두 국가'론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한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아시아전략센터장은 지난달 18일 '2025 국제 한반도 포럼(GKF)'에 참석해 "사실 우리는 두 국가론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다른 두 국가의 통일은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고 장악함으로써만 가능하며, 이는 참혹한 충돌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톨로라야 센터장이 국책연구원 소속인만큼, 그의 발언으로 러시아 당국의 외교적 노선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평가다. 러시아가 여론전을 통해 '두 국가'를 쟁점화해 한반도 및 동북아를 상대하는 다른 나라들의 계산을 복잡하게 하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중국의 입장은 미묘한 측면이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은 독립을 희망하는 대만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데, 자칫 남북 두 국가론을 수용하다 대만의 독립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차원에서다. 중국은 아직 남북 두 국가론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은 채,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희망하고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지지하며 모든 당사국이 이를 위해 건설적으로 노력하길 바란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somangcho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