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장관의 '북핵 인정' 행보…국민은 불안, 北은 웃는다[한반도 GPS]

'경각심 제고'와 북미 대화 추동 위한 전략이라지만…"선 넘는다" 지적도

정동영 통일부 장관.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9.19/뉴스1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의 하나가 됐다. 냉정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북한이 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플루토늄 전용이 가능한 고농축우라늄(HEU)을 2000㎏까지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최근 북한의 '핵 보유' 현황에 대해 밝힌 내용들은 꽤 파격적입니다. 국방부 장관이 아닌,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정책을 세우고 남북 대화·교류를 이끌어야 할 통일 장관이 북핵의 '실존성'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죠.

이런 발언이 자꾸 이어지자, 정 장관이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선을 넘은'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 장관의 파격적 발언에 대해 이러한 해설을 내놨습니다. 북핵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문제 해결에 빨리 나서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의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빠른 속도 때문에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불안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역대 한국 정부 중 북한을 가장 '강한 나라'로 인식하는 정부가 이재명 정부라는 말도 나옵니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나서주길 바라지만,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은 한반도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가자지구 및 중동 정세, 관세 협상과 이민자 문제 등으로 인해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가 아닌 듯합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움직이지 않는데 미국이 움직일 이유가 없다',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며 우리가 처한 외교적 현실이라는 자조적 진단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 능력'을 가장 알아주는 곳은 한국 정부이기도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미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열린 '대한민국 투자 서밋'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핵무기를 충분히 확보한 걸로 보인다"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관련해 이제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만 남겨둔 상황이라면서 "이대로 방치하면 핵폭탄이 15~20개 정도 늘 것", "북한이 핵무기를 수출할 수도 있다"는 말도 전했다고 합니다.

정부 관계자의 설명대로라면, 북핵 이슈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선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환기하는 역할에 나서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 시점에는, 국제사회의 호응이 약해 보입니다. 정부와 국제사회의 박자가 다소 맞지 않는 느낌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상황을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고, 만족하는 쪽은 북한이 아닐까 싶습니다. 빨리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싶은데, '적대국'인 한국이 먼저 나서 이를 홍보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는 한국 외교의 씁쓸한 자화상일 수도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없는 현실, 결국 북한의 핵 능력을 국제사회, 특히 미국에 '홍보'해야만 한반도 정세에 변곡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국격과 선을 지키는 방식으로, 국민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할 말은 하되 선을 넘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omangcho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