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불가' 존중하면 협력하겠다"…北, APEC 미국 행보 지켜본다

북미 모두 대화 수요 있지만 '탐색전' 지속
트럼프 한국 오면…2019년 '판문점 회동' 때처럼 전격적 만남 가능성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이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북한은 7년 만에 고위급을 파견한 유엔총회에서 '비핵화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비핵화 포기'를 전제로 한 북미 대화는 여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재차 발신했다.

다음 달 31일부터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까지는 북미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채 미국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은 2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제80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우리는 핵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핵화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자신들에게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곧 주권을 포기하고 생존권을 포기하며 헌법을 어기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한미가 '비핵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도 재차 밝혔다.

그러면서도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침략과 간섭,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고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 민족들과 사상과 제도의 차이에 관계 없이 협조할 것"이라며 "우리나라를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의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에 대한 존중과 우호를 전제로 한다면 '사상과 제도가 다른 국가'와도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역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임기 때인 2018년 6월 12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합의문을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북한은 지난 2018년 이후 7년 만에 고위급 대표단을 본국에서 뉴욕으로 파견하며 미국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도 연설에서 직접적인 대미 메시지를 내지는 않았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김선경 부상의 연설에는 복합적인 측면이 있다"면서 "우선 그간 유엔 주재 북한 대사가 해오던 연설을 굳이 외무성 부상이 했다는 건 분명 미국을 의식한 것이지만, 연설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미국을 직격했다기보다는 유엔국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를 정당화하고 이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만들기 위한 메시지에 가깝다"라고 해석했다.

북한은 지난 23일(현지시각)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제시한 이른바 'E·N·D(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이니셔티브'에 대해서도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김 부상의 이번 연설에서도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현재 한·미가 모두 APEC을 계기로 한 북미 대화 가능성을 계산하는 상황에서, 북한도 한미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 전략을 짜고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조현 외교부 장관은 전날인 29일 MBC와의 인터뷰에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북미대화 전개와 관련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라고 밝혀 한미가 관련 소통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 가진 이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2019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한국을 방문해 김정은 총비서와 '판문점 깜짝 회동'을 벌인 만큼, 이번에도 전격적인 만남이 진행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임 교수는 "북미 양측 다 대화 수요는 있지만 확실하게 발을 내딛지 않고 있는 모습"이라면서 "아직은 유의미한 진전이 없어 보이지만 미국 측이 조금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면 김정은이 호응해 예상치 못한 만남이 이뤄질 수는 있다"라고 내다봤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