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 제스처 보냈지만 "마주 앉을 일 없다"…남북관계 아직은 가시밭길

北, 이재명 정부 대북정책에 첫 반응…"선임자와 다를 바 없다"
김여정 담화, '남북 두 국가' 부각 표현 곳곳에…"역사의 초침 되돌릴 수 없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출처=조선중앙TV 갈무리) 2022.8.11/뉴스1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북한이 28일 "우리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며 이재명 정부와의 대화·협력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남북이 '적대적 두 국가'라는 자신들의 판단에는 변함이 없으며 한국 정부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똑같다는 '중대한 역사적 결론'을 내렸다면서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북한의 첫 반응이 부정적으로 나오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관계 '복원' 혹은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했다. '조한관계'는 조선과 한국이라는 뜻으로, 북한은 작년부터 이같은 표현을 남북관계를 대체하는 표현으로 공식 담화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김 부부장은 그간의 내부 검토를 통해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대단히 중대한 역사적 결론에 도달했다"며 이를 통해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해 구속돼 매우 피곤하고 불편했던 역사와 결별하고 현실 모순적인 개념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남북관계를 '민족과 통일'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한국 정부는 더 이상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는 뜻으로, 한국 정부가 대북 인식과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지난 시기 일방적으로 우리 국가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극단의 대결 분위기를 고취하던 한국이 이제 와서 감상적인 말 몇 마디로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면 그 이상 엄청난 오산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이뤄진 대북전단 살포 통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의 유화 조치로는 움직일 마음이 없다는 취지로 읽힌다.

김 부부장은 특히 정부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김정은 총비서를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헛된 망상"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근본적 변화 요구'가 핵심 메시지…'과거의 재현' 명백하게 거부
작년 8월 한미 간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의 일환으로 공군 KF-16 전투기가 서해상에서 지상 표적을 향해 GBU-31 유도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공군 제공) 2024.8.26/뉴스1

김 부부장의 이날 담화의 핵심 메시지는 한국 정부가 대북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다"라며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이미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 벗어났다. 조한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역사의 시계초침은 되돌릴 수 없다"라고 규정했다.

한국 정부가 자신들을 '공식적인 국가'로 대하는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 이상, 어떤 제스처에도 반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한은 지난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에서 민족과 통일의 개념을 빼는 '두 국가' 관계로 가져가겠다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날 김 부부장의 담화는 이러한 자신들의 기조를 관철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과거 방식의 남북 대화와 협력의 시대는 '끝났다'는 메시지를 낸 셈이다.

그러면서도 김 부부장은 한미동맹의 와해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려는 전통적인 대남 통일전선전술은 유지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우리와의 대결기도는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라며 "우리의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과의 밀착과 연합훈련 등을 멈추라는 것은 북한의 오래된 요구다.

그 때문에 북한이 오는 8월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인 '을지자유의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의 수위를 이재명 정부의 의지를 시험하는 또 한번의 시험대로 삼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전문가 "한미연합훈련 축소, 남북관계에 실효성 없다…속도 조절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이 북한의 어깃장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반응할 필요가 없으며, 남북관계의 유화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봤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북한이 남북관계에서 가장 불편해하고 예의주시하는 게 한미 간의 군사적 동맹인데, 이번 담화에서도 이러한 시각이 여실히 드러났다"면서 "그렇다고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견지하는 한 한국이 군사훈련을 연기 또는 축소한다고 해서 화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봤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역시 한미동맹에 대한 경고는 한국이 아닌 미국과의 대화를 염두에 둔 메시지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입장에서는 현재 관세 협상과 국방비 인상, 주한미군 역할 변화 논의 등 미국과의 관계가 최우선이고 북한 역시 이를 알고 있다"며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메시지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우선 대미 과제를 해결한 뒤 북한과의 연락망 복원부터 하나씩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새 정부 출범 50여일 동안 진행된 각종 유화책들이 다소 '빨랐다'는 지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대북 확성기와 대북 방송은 북한이 가장 민감해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남북 협상에서 중요한 카드였다"면서 "이를 너무 빨리 써버린 감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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