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신변 위협 받는 북한군 포로 송환을 홍보하라고?
-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러시아에 파병돼 우크라이나군과 맞서는 전선에 투입됐다가 지난해 1월 생포된 북한군 병사 두 명이 1년 8개월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처음 알린 건 정부가 아니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다.
야권은 곧장 '북한 눈치 보기'라고 정부를 몰아붙였다. 정부가 먼저 이들의 입국 사실을 국민에게 알렸어야 하는데,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숨겼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다.
그러나 이 주장이 유효하려면, 한국에 온 두 병사가 정부의 발표에 동의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두 사람은 정말 자신의 한국행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원했을까?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체류하는 동안 꾸준히 한국에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다. 하지만 한국행을 원한 것과 그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한 것은 다르다. 스스로 국경을 넘었든 포로 신분으로 왔든, '탈북민'이 된 사람은 안전을 위해 본인의 뜻이 확인될 때까지 신변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신변 보호는 모든 것이 알려진 뒤 이뤄지는 '신체에 대한 경호'가 전부가 아니다. 이 두 병사가 언제, 어떤 경로로 들어와 어디에 머무는지 등의 정보가 타의에 의해 공표되지 않는 것이 진짜 '보호'다.
정부가 이를 지키지 못한 전례도 있다. 2016년 4월 정부는 중국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 및 한국 입국 사실을 이들의 입국 바로 다음 날 발표했다. 20대 총선을 닷새 앞둔 때였다.
이들이 정부의 발표에 '동의'했다는 동의서는 작성됐다고 한다. 하지만 3년 뒤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가 탈북 종업원들에게 공개 목적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은 채 동의서를 받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금 정부에 두 명의 병사의 한국 입국을 공표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는 건, 어쩌면 10년 전의 잘못을 되풀이하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다.
두 사람의 처지는 위태롭다.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생포 직후 공개된 심문 영상과 잇단 언론 인터뷰로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 '적'에게 잡히면 자폭하라는 '당의 지시'도 이행하지 못했다. 이들의 입장에선 자의와 무관하게 누군가 자신들의 한국 입국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곧 생명의 위협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언제, 어디까지 알릴지는 정치적 셈법이 아니라 당사자의 뜻과 안전에 따라 정해야 한다. 이런 처지의 두 사람을 두고 입국을 홍보하지 않았다고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우크라이나의 공개 방식도 따져봐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다친 두 사람을 치료했고 결국 한국으로 보냈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서 이들의 얼굴이 드러난 심문 영상을 SNS로 공개하고 △러시아에 억류된 자국 포로와의 맞교환 카드로 삼았으며 △한국의 무기 지원을 위한 협상 카드로도 삼았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가 정말 이들을 인도주의적 관점으로만 대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전쟁 포로의 대우에 관한 협약'인 제네바 제3협약은 포로를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보호하도록 규정한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포로의 사진·영상과 심문 녹화물, 신원을 알 수 있는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이 조항에 어긋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도 지난해 7월 두 병사의 신원이 드러나는 사진과 영상의 유포가 포로 보호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두 병사의 한국행을 두고 정치적 싸움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새 삶을 시작할 두 사람과 북한에 남은 가족의 안전이다. 우리가 인도주의적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하는 창피한 나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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