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활 잡았지만 이제 태극마크 겨냥…'탈북 2세' 궁사 윤노을의 꿈
[경계를 건넌 사람들] 대전대청중 양궁선수 윤노을
금메달 휩쓰는 최고 유망주…"목표는 최연소 국가대표"
- 윤주현 기자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처음엔 친구가 하자고 해서…양궁부는 돈이 많이 안 든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탈북민(북향민) 2세 양궁 유망주 윤노을 양(대전대청중·15)이 양궁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학교에서 주는 간식도 먹을 수 있고, 큰 비용도 들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입부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랬던 양궁이 잘 맞았다. '낭중지추'(囊中之錐)였던 노을 양은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며 전국구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만 15세를 갓 넘어선 그는 이제 '최연소 국가대표'라는 목표를 정조준하고 있다.
탈북민이던 노을 양의 부모는 중국 칭다오에서 그를 낳았다. 노을 양은 5살이 되어서야 부모 손을 잡고 한국 땅을 밟아 대전에 터를 잡았다. 큰 부침 없이 다른 또래처럼 평범하고 무탈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
노을 양의 운명이 바뀐 때는 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친한 친구가 방과 후 활동으로 양궁부 입부를 제안하면서다. 당장 개인장비를 갖출 필요가 없어 큰돈이 들지 않고, 간식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노을 양도 선뜻 친구의 제안을 따랐다.
"사실 전 양궁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때 양궁을 같이하자고 제안한 친구는 곧 양궁을 그만둔 것도 아이러니하네요."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양궁이지만, 운명이었다. 노을 양은 빠르게 두각을 드러냈다. 양궁 선수에게 필요한 다부진 체격과 침착한 성격을 가진 그의 기량은 빠르게 올라갔고, 그대로 성적으로 이어졌다.
입부 2년 차에 참가한 2023년 전국양궁선수권 대회 여자 초등부 35m 경기. 노을 양은 350점으로 한국 신기록을 기록하며 1등을 차지했다. 이후 참가하는 대회마다 금메달이 이어졌다. 노을 양은 어느새 전국구 양궁 유망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청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기량은 여전했다. 이렇다 할 고비 없이 바로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자연스럽게 양궁에 대한 노을 양의 흥미도 커졌다. 학교 양궁 연습장에선 저녁 늦은 시간까지 그의 활시위 소리가 이어졌다.
중학교 3학년을 맞은 올해 노을 양의 활 끝은 더욱 매서워졌다. 지난 4월 열린 '전국종별남여양궁선수권대회'에서 그는 여중부 종합 점수 대회 타이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했다. 지난 5월 열린 소년체전에서도 대회 2관왕에 올랐다.
지난 16일 열린 '화랑기 전국 시·도 대항 양궁대회'에선 활약이 정점을 찍었다. 대한양궁협회가 주관하는 화랑기 대회는 전국 지자체를 대표하는 중·고등부 유망주들이 참가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청소년 양궁 대회인데도,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노을 양은 여자 중등부 개인전 60m 결승전에 진출하며 최초로 전국 중계 대회에서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경기에 돌입하자마자 10점을 연이어 기록하며 세트 스코어 6대 0, 완승을 거뒀다.
노을 양 본인도 이번 대회를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꼽았다. 올림픽과 동일한 1 대 1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경기에서도 평정심이 흔들리지 않았다. 대회 해설자인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주현정 코치가 그의 침착한 모습에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기도 했다.
"대회 결승에 진출하면 TV 중계에 나올 수 있다고 해서 화랑기 대회를 가장 기대했어요.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 한국으로 와 성장기를 보낸 만큼, 노을 양은 여느 북한이탈주민들과 달리 '탈북민'(북향민) 가족이라는 정체성을 크게 의식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탈북민 2세'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잊진 않았다고 한다. 노을 양의 어머니가 지역 탈북민 단체에서 활동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과 사회 공헌 활동에 적극 나서는 것에 영향을 받았다. 받은 도움만큼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철학 아래 노을 양 또한 수시로 어머니를 따라나서고 있다.
탈북민 사회도 노을 양의 꿈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고 있다. 양궁은 활 하나에 수백만 원이 넘을 정도로 금전적 부담이 큰 스포츠다. 성인 레벨에 가까워질수록 장비와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난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노을 양이 속 편하게 운동에만 집중하기 쉽지 않은 구조인 셈이다.
이런 노을 양의 사정을 알게 된 탈북민 지원 재단인 남북하나재단(하나재단)이 장학금을 지원하며 도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탈북민들 또한 대회가 있을 때마다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응원한다고 한다. 이 밖에도 아동·청소년의 재능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초록우산의 장기 인재 양성 사업인 '아이리더'에 선정돼 지원받고 있다.
노을 양은 "탈북민 분들의 응원이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들 기대와 응원을 주셔서 감사하다"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또래 선수 중에선 최고의 유망주로 자리매김한 노을 양의 꿈은 이제 '최연소 국가대표'를 향하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 그는 유일한 중학생 선수로 출전해 성인·대학·고교 선수들과 나란히 서 활시위를 당겼다.
쟁쟁한 선수들이 참가한 선발전에서도 노을 양은 주눅 들지 않았다. 전체 61명 가운데 14위에 오르며 2차 선발전 진출권을 당당히 따냈다. 중학교 3학년 선수가 성인 선수들 사이에서 거둔 성적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자신의 '롤 모델'을 묻는 말에 노을 양은 주저 없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제덕(22) 선수를 꼽았다. 어려웠던 가정환경을 이겨내고 최연소(17세)로 국가대표에 선발된 김 선수처럼, 주어진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실력으로 태극마크를 달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지금은 노을 양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다. 고등학교 때부터 모든 대회에서 성인과 동일한 70m 거리 과녁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내년부터는 지역을 넘어 전국의 유망주들, 그리고 성인 선수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노을 양 또한 훈련량을 점차 늘리며 치열해질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매년 뛰어난 성적을 기록해 왔지만, 반복되는 훈련과 심리적 압박에 지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노을 양은 자신을 믿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떠올린다고 밝혔다.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지켜봐 온 어머니부터, 지금까지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 사람들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다시 활을 들게 만드는 이유라고 노을 양은 말했다.
※뉴스1·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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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계선을 넘어 새로운 삶에 정착한 이들. 정착 이후에도 크고 작은 경계를 극복해 온 사람들의 삶을 기록합니다. 지리적 경계만이 아니라 문화와 관계의 새로운 세계를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삶 위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몰랐고, 알아야 할 삶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