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전쟁 끝내자"…李, '평화체제→북핵 중단' 승부수
'비핵화 선행'보다 적대 해소·핵 고도화 중단에 방점…단계적 접근 구체화
'페이스메이커이자 당사자' 역할 자임…9월 유엔총회·11월 APEC 외교전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이를 토대로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멈추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는 구상을 제시했다.
완전한 비핵화를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앞세우기보다 적대와 대결을 먼저 완화하면서 북한의 핵 능력 증강 중단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으로,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이 한층 구체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 대통령이 한국의 역할을 '페이스메이커이자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로 규정하면서 향후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남북관계 복원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여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로에 대한 상호 위협 의사를 내려놓고, 아주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자들 간의 논의를 시작하자"며 "이를 통해 북의 핵 능력 고도화를 멈출 실효적 방안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되는 것은 평화체제와 북핵 문제를 연결한 방식이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남북관계 개선이나 평화체제 구축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기보다, 적대관계를 완화하고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우선 멈출 방안을 함께 찾겠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이날 공개한 후속조치 역시 이러한 구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우선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하고,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마련하기로 했다. 동시에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중단하기 위한 '실현 가능한 구체적 해법'을 마련하고 주요국과 전략적으로 소통해 북한의 핵 활동을 우선 중단하는 논의를 견인한다는 방침이다.
핵심은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에 이르는 접근 순서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데 있다. 북한이 핵무력 고도화를 지속하고 비핵화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완전한 비핵화만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기보다 핵 능력의 추가 고도화를 먼저 멈추고 이후 비핵화로 나아가는 단계적 접근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책임 있는 평화공존'의 목표로 한반도 평화가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이정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역시 '핵 없는 한반도·동북아 평화 촉진'을 평화공존 발전구상의 한 축으로 유지하고 있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핵 없는 한반도'를 지향하되, 당장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일괄적 비핵화 대신 핵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해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진전시키겠다는 접근으로 읽힌다.
이번 경축사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이 '원칙 제시'를 넘어 구체적인 실행구상을 내놓는 단계로 진전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구라는 이른바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올해는 이를 토대로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공존' △싸울 필요가 없는 '안정적 평화공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평화공존'이라는 '3대 청사진'을 내놨다.
특히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인식과 규범, 제도에서부터 적대성을 하나씩 줄여 나가야 한다"고 밝힌 점이 눈에 띈다.
통일부는 이에 따라 남북 간 '상호 존중의 이름부르기'와 '주적' 표현 대체 등을 대상으로 공론화에 착수할 예정이다. 판문점·군 통신선 복구를 위한 대화 제의와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 경원선 복원 등도 후속 과제로 제시됐다.
지난해 3대 원칙이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적대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올해는 이를 실제 남북관계와 제도에 반영하기 위한 행동계획까지 제시한 셈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맡을 역할을 '페이스메이커'와 '당사자'라는 두 축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적대와 대결의 에너지를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동력으로 바꿔내겠다"며 "페이스메이커이자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메이커'에는 북미 간 비핵화·평화 협상이 재개될 수 있도록 한국이 주요국과 소통하고 협상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교류협력, 평화체제 논의에서 한국이 직접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통일부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플러스)'를 가동하기로 했다. 범정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주요국과 전략적으로 소통하면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오는 9월 유엔총회와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다자외교 무대를 활용해 평화체제 및 북핵 고도화 중단 구상에 대한 주요국의 공감대를 넓혀갈 계획이다.
결국 이번 광복절 경축사의 대북 메시지는 지난해 천명한 '적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적대성 완화→남북관계 복원→평화체제 논의→북핵 고도화 중단→핵 없는 한반도로 이어지는 단계적 경로를 처음으로 비교적 선명하게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만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 대화 자체에 선을 긋고 있는 만큼, 정부가 제시한 청사진이 실제 협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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