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가만 있고 정세는 어려워지자…대통령 '대북정책' 생각 바뀌었나
"바늘구멍이라도 만들어야"에서 "선의가 플러스인지 고민"…온도차 감지
'마이웨이' 고집하는 北·정세도 韓에 유리하지 않아
- 한상희 기자, 윤주현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윤주현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말 북한이 호응하지 않더라도 "선제적·주도적으로" 움직이라고 주문했던 이 대통령이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게 과연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플러스냐"며 의문을 제기하면서다.
'평화 공존과 대화 추진'이라는 큰 방향은 그대로지만, 우리가 먼저 선의를 보이면 북한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접근법에 대한 실효성을 다시 따져보겠다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배경에는 더욱 심화한 북한의 대남 강경 노선과 한국에 결코 유리하지 않은 국제 및 한반도 정세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6일 나온다.
이 같은 기류는 전날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진행된 통일부 등의 업무보고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주장해 온 북한의 정식 국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르기를 언급하며 "선의로 하는 일이고,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확신하시는 일일 텐데 논쟁의 여지는 있는 일"이라며 "최근에 한번 심하게 반격당하셨죠"라고 말했다.
자신의 대선 공약인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이냐', '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냐'라는 반격이 나온다"며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것이 과연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플러스(도움)냐, 약간의 의문이 들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업무보고 때와는 온도 차이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북한이 접촉 자체를 거부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선제적으로, 주도적으로" 남북 간 적대를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며 "그 역할은 역시 통일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특히 당시는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놓고 외교부 중심의 '동맹파'와 통일부 중심의 '자주파'가 신경전을 벌일 때였기 때문에, 이 대통령의 언급은 사실상 정 장관을 비롯한 동맹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통일부는 이를 토대로 대북 사안을 총괄할 '한반도평화특사' 신설 등 적극적인 관여 구상을 추진했다.
그 사이 북한의 움직임과 정세는 정부의 기대와 정반대로 흘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대외노선 변화'가 기대됐던 지난 2월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 영원한 적"으로 재차 규정하고, 정부의 대북 신뢰회복 조치를 "서투른 기만극이고 졸작"이라고 일축했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하고, 이 전쟁의 장기화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떨어지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전환하고 자신들의 핵보유국 입지를 인정하라는 요구를 검토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자, 북한은 대미 대화에 대한 관심을 끊고 핵능력 고도화에 더 집중했다.
정부가 기대했던 중국의 역할도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7년 만의 방북의 결과는 대북 압박보다는 북중 관계 복원에 가까웠다. 정상회담 결과에서도 과거와 달리 비핵화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
북한은 정상회담 직후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무력 확대·강화가 "유일한 길"이라고 못박고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또 규정했다.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지뢰를 매설하고 철책·방벽과 전술도로를 구축하는 '남부국경 요새화 공사'도 완결하겠다고도 했다.
러시아와의 군사적 밀착에 이어 중국과의 관계까지 안정되면서 북한이 한국과 관계 개선에 나설 유인은 더욱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과의 전쟁을 간신히 종결 국면으로 끌고 온 미국은 이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에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통일부가 기대했던 '남측의 선제적 신뢰 조치→북한의 호응', '중국의 대북 영향력 활용', '북미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견인'이라는 구상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뚜렷한 성과로 이어지지 않은 셈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북한의 호응 없는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과 '조선' 호칭 등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했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 우리 측 조치만 이어질 경우 실익 없이 정치적 부담만 키울 수 있다는 판단도 이 대통령의 '신중론' 제기에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통일부의 업무보고 내용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도 정부 내 기류 변화의 방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조 장관은 통일부의 대북 구상에 대해 "외교부는 통일부가 제시한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업무보고 이후 사후 브리핑에서는 통일부 구상을 "이상주의적"이라고 평가하며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공개 반박했다.
대통령이 신중론을 밝힌 당일 외교부 장관까지 이견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외교가에서는 북한의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 선제 조치를 더 늘리기 어렵다는 대통령의 판단이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외교안보 라인에 공유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정 장관은 이날 출근길에서 대통령이 대북정책의 기조를 바꾸거나,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는 해석에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이) 평화 공존에 대한 확실한 의지와 함께 통일부에 대해 응원을 보내줬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현재의 접근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라며, 대통령 발언을 업무보고 전체에 대한 제동으로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독"이라고 했다.
통일부는 북한과의 평화 공존 추진 기조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통령이 선제적 조치의 실효성에 직접 의문을 제기하고 외교부까지 가세한 만큼, 지난해 말과 비교해 대북 접근법에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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