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만남 불발됐지만…북미 대화 불씨는 커졌다
[경주 APEC] 대화 의지 적극 밝히며 의제도 좁힌 트럼프…외교는 이미 시작
전문가 "北, 대화의 문 차단한 것 아냐…시기 고민할 것"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추진됐던 북미 정상의 회동은 결국 불발됐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과의 회동 의사를 예상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밝히면서 북미 대화의 불씨는 오히려 커졌다는 평가가 30일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김 총비서를 향해 만나자는 '러브콜'을 보냈다.
그는 지난 24일 말레이시아로 떠나는 전용기에서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칭하며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원했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주는 듯한 발언을 통해 김 총비서가 대화에 나서도록 유인책을 던진 것이다.
이어 지난 27일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는 "그(김정은)가 만나길 원한다면 한국에 더 있을 것"이라며 "내가 그쪽(over there)으로 갈 수도 있다"라고 말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체류 기간 중 전격 방북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해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출발과 동시에 북미 회담의 실무 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상의 러시아·벨라루스 방문 사실을 공개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당일에는 순항미사일 발사를 단행했다고 발표하며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출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일본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며 "현재 우리의 초점은 미중 정상회담에 있다"면서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고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김정은과 만날 것"이라고 말하며 김 총비서와의 회동이 무산됐음을 시사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는 양 정상이 북미 정상 회동의 '불발'을 공식 확인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비록 이번 만남이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앞으로 북미가 사전 접촉을 위한 실무 라인 가동을 활성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북한이 당장 미국의 제안에 응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차단했다기보다는, 당장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집중하면서 추후 미국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경제 및 안보 분야에 있어 '패권 경쟁'의 담판을 짓기 위한 회담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도 북한의 고려사항이었을 수 있다. 중국과 밀착하며 외교적 지지를 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시 주석의 '빅 이벤트'가 아닌 자신들에게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리게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각별한 친분'을 무기로 내세우는 김 총비서의 입장에서 이번 정상 회동을 거절한 것은 앞으로 외교적 부담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한 번의 '대북 드라이브'를 건다면, 북한도 가만히 있기 어려울 것이라는 차원에서다.
그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오히려 먼저 비공식 물밑 채널을 가동해 미국에 대한 나름의 관리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한다.
또 미국의 적극적인 태도를 확인한 만큼, 내년 초 개최가 예상되는 노동당 9차 대회 때 미국과의 외교를 염두에 둔 외교 노선 확정 여부를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서 자신들의 대외 노선을 더 확실하게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내년 초로 예상되는 9차 당 대회에서 북미 대화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공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의 대북 정책에도 힘이 실리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앞 글자를 딴 이른바 'E·N·D 이니셔티브'를 한반도 평화 구상으로 제시한 바 있다. 특히 남북 대화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이같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우선 북미 대화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북미 대화의 불씨가 커졌다는 것은 일단 정부 구상의 첫 단추가 잘 채워지는 결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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